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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류혜영 “‘응팔’ 이후 기다리는 삶 감옥…라미란·김숙에 일 달라고”

한현정
입력 : 
2026-10-20 07:00:00
‘인턴’·‘암살자(들)’·‘킬링타임’ 연속 개봉…“일 끊이지 않는 지금 행복”
“회사만 믿고 있을 수 없어 직접 PD 찾아다녀”
“남윤수는 나와 정반대…흔들림 없이 여유 있는 ‘나무’같아”
사진 I (주)더타이틀
사진 I (주)더타이틀

“사지가 멀쩡한데 왜 집에서 기다리고만 있지?”

배우 류혜영은 기다리는 대신 움직이기로 했다. ‘응답하라 1988’의 성보라로 뜨거운 사랑을 받은 뒤 오히려 찾아온 불안과 긴 공백. 작품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그는 30대가 되면서 생각을 바꿨다. 직접 PD들을 만나 자신을 알렸고, 라미란과 김숙에게는 “일 좀 소개해달라”며 대놓고 영업까지 했다.

그렇게 뿌린 씨앗이 이제 하나둘 열매를 맺고 있다. 최근 영화 ‘인턴’과 ‘암살자(들)’, ‘킬링타임’이 비슷한 시기 연이어 관객과 만나게 된 것도 그 결과 중 하나다.

류혜영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킬링타임’ 개봉 기념 인터뷰를 갖고 배우로서 긴 기다림을 끝내고 직접 기회를 찾아 나서게 된 과정부터 최근의 다작 행보, 함께 호흡을 맞춘 남윤수에 대한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털어놨다.

“‘응팔’ 성보라로만 알까봐… ….”

류혜영에게 ‘응답하라 1988’은 배우 인생의 대표작인 동시에 또 다른 고민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성보라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중이 저를 성보라로 기억해 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라면서도 “관계자들까지 저를 성보라로만 알고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당시에는 ‘배우는 기다리는 직업’이라는 말을 믿었다. 노출이 적어야 배우에게 신비감이 생긴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답답함도 쌓였다.

“배우가 기다리는 직업이라는 건 인정해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지가 멀쩡한데 계속 기다리고만 있었으니까요.”

사진 I (주)더타이틀
사진 I (주)더타이틀

결정적인 순간은 의외로 평범했다.

“어느 날 거울을 봤는데 너무 멀쩡한 여자가 있는 거예요. 그날따라 피부도 너무 좋았어요.(웃음) 이렇게 멀쩡한데 지금 연기를 하고 있어야지, 벌건 대낮에 왜 집 안에서 버티고 있나 싶었어요.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죠.”

류혜영은 그때부터 ‘선택받기만 하는 배우’에서 벗어나 직접 자신을 팔기 시작했다. “집에만 있고 회사만 믿고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직접 PD님들을 만나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류혜영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보여줬단다.

“실제로 만나면 성보라와 다른 면도 있다는 걸 아실 수 있잖아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나 혼자 산다’에서 예전의 제가 달팽이였다면 이제는 집을 벗어던진 민달팽이가 됐다고 표현했죠.”

친분도 적극 활용했다. 그는 “내 인맥으로 영업해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라미란 언니, 김숙 언니에게도 찾아가 ‘예능 좀 소개해달라’고 했다. 여기저기 씨를 뿌렸다”고 웃었다.

아는 PD들에게도 먼저 연락해 “커피를 마시자”고 했고, “아무거나 좋으니 일을 달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소속사에 대한 서운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회사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제가 될 듯 말 듯한 경계선에 있는 ‘아픈 손가락’ 같은 배우였던 것 같아요. 저를 아끼니까 좋은 작품, 잘 맞는 캐릭터 하나를 찾아주고 싶었겠죠. 회사에는 너무 감사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저는 ‘아무거나 하겠다. 연기가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지 2년여. 변화는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제가 뿌렸던 씨앗들이 지난해부터 조금씩 수확되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드릴 수 있는 것도 그동안 뒤에서 소셜링을 많이 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류혜영 자신의 삶이었다. 그는 “사람은 자신이 생산적인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너무 멀쩡한데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게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면서 “지금은 내일도 일이 있고, 일이 끊이지 않는다는 게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 결과물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최근 ‘인턴’과 ‘암살자(들)’에 이어 ‘킬링타임’까지 비슷한 시기에 공개됐다. ‘킬링타임’은 약 2년 전 촬영한 작품이다.

류혜영은 “저는 계속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공개 시기는 제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킬링타임’은 2년 전 이맘때 촬영했다. 20회차 정도로 굉장히 짧게 찍었고, 10월 한 달 안에 끝내야 한다는 미션을 받고 달려들었다”고 회상했다.

개봉까지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때는 관객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 워낙 찍어놓고 개봉하지 못하는 작품도 많으니까 ‘개봉을 못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촬영한 것 자체에 만족하려고 했죠. 그런데 이렇게 개봉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될 줄은 몰랐어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작품이 한꺼번에 공개되는 게 아쉽기도 했다. 오랜 시간 쌓은 결과물이 짧은 기간에 소진되는 듯한 기분 때문이었다. 이제는 생각을 바꿨다.

“올해도 공교롭게 작품들이 같은 시기에 나오더라고요. 이제는 ‘이게 내 운명인가 보다’ 해요. 다양한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게 오히려 감사하죠.”

‘킬링타임’은 류혜영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얼굴을 꺼내게 한 작품이다. 한순간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은 인터넷 방송 크루가 재기를 위해 폐병원을 찾았다가 의문의 존재에게 습격당하면서 벌어지는 타임어택 스릴러. 류혜영은 방송 복귀 현장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연우를 연기했다.

특히 오래전부터 갈망했던 액션 연기를 위해 촬영 전 두 달간 꾸준히 달리며 체력을 끌어올렸다. 전날 열린 언론배급시사회에서도 그는 액션에 대한 오랜 갈증 때문에 작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 I (주)더타이틀
사진 I (주)더타이틀

함께 호흡을 맞춘 남윤수 이야기에는 웃음부터 터졌다. 남윤수는 영화 기자간담회에서 류혜영이 현장을 잘 이끌어줬다면서 “두세 살 차이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더라. 완전 누나였다”고 말했다.

이를 전해 들은 류혜영은 “윤수는 저에게 논란의 연속”이라며 웃었다. 이어 “특별히 나이 이야기를 해서 놀란 건 아니”라며 “윤수는 매 순간 저한테 놀라운 친구라 재미있었다. 이번에 같이 활동하면서 미처 몰랐던 매력도 많이 알게 됐다”고 했다.

“생각보다 훨씬 안정적인 사람이에요. 함께 활동할수록 저와 정반대라는 게 명확해져요. 어떤 상황에서 제가 할 선택과 완전히 반대되는 선택을 할 것 같은 사람이죠.”

특히 자신의 20대와 비교하면 더욱 신기하다고 했다.

“20대라는 나이가 주는 불안함이 있잖아요. 외부의 나와 내부의 내가 하나가 되지 못하면서 생기는 혼란도 있고요. 그런데 윤수는 그런 걸 겪고 있을까, 겪기는 했을까 싶을 정도로 평온하고 안정적이에요. 약간 득도한 것 같달까요. 이미 뭔가를 알고 태어난 사람처럼 여유가 있어요.”

기다리는 배우에서 직접 문을 두드리는 배우로, 신비주의를 고집하던 사람에서 스스로 “민달팽이”가 됐다는 류혜영. 그 변화 끝에 지금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

“제가 먼저 저를 보여드렸는데 사람들이 저를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져주고, 작품에 쓰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해요. 하루하루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일이 끊이지 않는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한때 기다림은 감옥 같았지만, 이제 류혜영은 자신이 직접 만든 기회 안에서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지 2년. 그가 뿌린 씨앗은 이제 막 수확기에 접어들었다.

그 중 하나인 ‘킬링타임’은 오는 2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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