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정하고 업그레이드에 나선 윤아와 뉴페이스 안보현이 힘을 모았지만, 조정석의 문턱은 높았다. ‘엑시트’ 감독의 신작, ‘악마가 이사왔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감독이 ‘엑시트’ 후 꺼내든 유쾌하고도 신박한 상상력은 이번에도 순수하고 무해했다. 재난과 코미디, 가족 드라마를 섞었던 전작과 달리 이번엔 미스터리(?)와 코미디, 멜로가 혼합된 장르 믹스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엔 그 어느 쪽도 제대로 몰입이 되지 않는, 산만한 콜라주에 가깝다.
영화는 대대로 이어지는 저주로 새벽마다 악마로 깨어나는 선지(임윤아)와 그녀를 감시하는 아르바이트에 휘말린 청년 백수 길구(안보현)의 핑크빛 고군분투를 담은 악마 들린 휴먼 로코다.
설정은 흥미롭지만, 인물은 그 설정의 깊이에 따라가지 못한다.

임윤아는 낮에는 천사 같은 선지, 밤에는 악마에 빙의되는 선지를 모두 소화하며 1인 2역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 대비는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평면적이다. ‘청순 선지 vs 광녀 선지’ 구도로 반복되는 에피소드는 금세 진부해지고, 특히 악마 모드는 매력적이라기보단 민망하다. (그나마 예쁘고 귀여운 윤아라 미소 지으며 볼 수는 있다.)
안보현이 연기한 길구는 외형만 상남자인, 내향적이고 수동적인 ‘무해한 호구’ 남주. 둘의 조합은 비주얼적으로는 괜찮지만, 서사나 감정선에선 특별한 시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무엇보다 장르 믹스가 무색할 만큼 각 요소가 모두 얕다. 호러는 양념처럼 흩뿌려졌고, 코미디는 산만하며, 멜로는 밍밍하다.
감독 특유의 따뜻하고도 깔끔한 연출은 여전하지만, 이야기를 뒷받침할 드라마 자체가 헐겁다. 음악은 유난히 인공적이고 ‘샤방샤방’ 톤에 치중해 촌스럽다. 스토리가 엉성한 탓에 캐릭터의 감정선도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채, 설정의 껍데기만 돌고 돈다.
‘악마의 저주’라는 큰 장치도, ‘가족의 비밀’이라는 연결 고리도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진부해 감정의 깊이나 약간의 스릴도 따라오지 못한다. 이쯤 되면, 이 작품이 남긴 건 애매한 장르 감각과 배우들의 비주얼 정도뿐이다.
무엇보다 조정석이 출연한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은 내내 ‘조정석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메가폰의 전작 ‘엑시트’의 후광이 컸던 만큼, ‘조정석엔 좀 미달’이라는 말장난은 이 작품이 짊어져야 할 가장 현실적인 잣대다. 새삼 ‘배우 조정석’의 에너지가, 내공이, 대세 기운이 얼마나 독보적이었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아는 맛이어도 맛있는 맛은 아무나 내는 게 아니니까. 추신, ‘좀비딸’도 (기대엔) 좀 미달이라 했지만, 이건 진짜 미달이에요.
8월 13일 개봉. 12세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2분. 손익분기점은 약 170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