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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 “전도연 ‘참 잘 사네’…더 자유로웠다” [인터뷰]

양소영
입력 : 
2026-11-06 17:11:14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 사진|넷플릭스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 사진|넷플릭스

영화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바로 ‘가능한 사랑’이다.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녀의 남편,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과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 제64회 뉴욕영화제 메인 슬레이트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이 감독이 처음으로 넷플릭스와 손잡은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이 감독은 일반 관객과의 만남을 앞둔 소감에 대해 “기대가 되기도 하고 설렌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극장 개봉을 하긴 했지만 제한된 상영이어서 소수의 영화 애호가들만 봤다.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일반 관객을 처음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이어 “넷플릭스에서 쉽게 접하는 영화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전개가 느리고 쉬운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뿐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겪는 상황, 일상의 조건과 연결된 이야기다.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보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 다른 관람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관람 팁을 묻자 이 감독은 영화 고유의 리듬을 강조했다. 그는 “무조건 참고 봐달라”며 웃은 뒤 “영화에는 영화만의 리듬과 템포가 있다. 요즘에는 영화를 빨리 돌려 보거나 건너뛰어 봐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가능한 사랑’은 그렇게 보면 안 된다. 영화 속의 시간을 나의 시간과 맞춰서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 속의 시간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렇게 보면 충분히 몰입할 수 있고 재미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펙터클한 이야기뿐 아니라 별것 아닌 일상의 풍경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게 많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사람의 표정만으로 많은 것이 전달될 수 있다. 작은 화면을 통해서도 그런 영화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은 이 감독의 첫 넷플릭스 영화지만, 처음부터 스트리밍 공개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처음에는 극장용 영화를 만들기 위해 투자를 찾았다. 넷플릭스가 기다려줬고 결국 함께하게 됐다”며 “넷플릭스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는 요구도 없었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화면의 크기나 매체와 상관없이 영화의 힘은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와 극장 영화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을 밝혔다. 이 감독은 “이번 작품이 극장용 영화와 스트리밍 서비스가 어떻게 공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시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 영화의 자리를 빼앗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며 “극장에서 상영한 뒤 스트리밍으로 넘어가는 방식을 시범적으로 해보는 것이다. 상영 기간은 짧았지만 아카데미 조건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박스오피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넷플릭스를 선택한 데에는 한국 영화 산업의 현실도 영향을 미쳤다. 이 감독은 “2025년 초가 한국 영화 산업의 바닥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작사 대표들도 체력이 바닥난 상황이었다”며 “코로나19 이후 스트리밍 서비스가 커지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집에서도 좋은 화질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이런 변화는 불가피하고 어느 정도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이어 “조금 더 기다리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마음이 급했다. 넷플릭스에서라도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상업적이지 않고 개성을 가진 한국 영화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시청자에게 다가갈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주어진 기회 안에서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 사진|넷플릭스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 사진|넷플릭스

‘가능한 사랑’의 출발점에는 해고 노동자의 현실을 바라보며 느낀 충격과 고민이 있었다. 이 감독은 과거 해고 노동자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자의 권리와 가치가 있다고 말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노동자들끼리도 갈라서게 되고, 그 정신적 충격이 자기 삶의 가치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또 “자본의 수익성과 논리가 더 중요해지고 노동자의 가치는 옛날이야기처럼 되어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또 다른 질문과 마주했다. 바로 자신이 그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 감독은 “그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내가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어떤 자리에서 이야기해야 하는지 질문하게 됐다. 내가 그들을 대변하는 것이 정직한 일인지 고민했다”며 “노동의 문제는 점점 악화되는데 이야기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2022년 단편 ‘심장소리’를 찍으면서 이 작품을 떠나보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전환점은 2024년 하반기에 찾아왔다. 영화에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를 등장시키는 구상이 더해지면서 이야기의 방향이 달라진 것이다.

그는 “나는 카메라를 든 사람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 문제까지 영화 안으로 가져가면 어떨까 싶었다”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전달하는 사람의 태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무엇을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극 중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의 모습에는 창작자로서 자신의 고민도 투영돼 있다. 이 감독은 “나 역시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자본 안에서 내 목소리를 전달하고 독립적인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도, 무엇을 어디까지 전달해야 할지 끊임없이 윤리적인 문제와 마주한다”고 밝혔다.

영화 속 호석이 계곡에서 고통을 토해내는 장면 역시 그러한 고민이 반영된 사례다. 그는 “그 모습을 가까이서 찍어야 하는지, 미옥의 시점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해야 하는지 선택해야 한다. 영화 연출은 결국 선택하는 일이다. 현장에서 수백 번의 선택을 하지만 때로는 윤리적인 선택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과 얼마나 가까운지, 관객이 그것을 얼마나 진짜로 받아들이는지다. 관객이 왜 저런 모습을 보여주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보여줘야 할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랜만에 다시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전도연과는 ‘밀양’ 이후 19년 만의 재회이며, 설경구와도 세 번째 작업이다.

이 감독은 “그동안 자주 만나면서 인간적으로 훨씬 가까워졌다. 처음 함께 작업할 때는 서로 잘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웠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서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며 “한마디로 더 자유로워졌다. 그 자유가 좋았다”고 말했다.

특히 전도연의 연기를 지켜보면서는 배우의 연기력 자체보다 인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컸다고 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보다 ‘참 잘 사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머릿속에 그린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미옥이라는 인물을 발견해 나가는 느낌이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시나리오에는 말이 많고 수다스럽고 약간 주책맞은 인물이라는 기본적인 설정이 있지만, 실제로 어떤 사람이 될지는 해봐야 안다. 빨대로 음료를 빨아 마시는 행동도 시나리오에 없던 것으로 전도연 배우가 직접 한 것이다. 그런 사소한 행동들이 인물을 만든다. ‘연기를 잘하네’가 아니라 ‘미옥이가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 사진|넷플릭스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 사진|넷플릭스

촬영 현장도 이전 작품들과는 달랐다. 그는 “이번 작품은 신기하게도 덜 힘들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제작 환경이 좋아져서인지는 모르겠다”며 “스케줄은 촉박했다. 물이 차가워지기 전에 촬영해야 해서 별장 시퀀스를 먼저 찍었고, 전도연 배우의 해외 일정 때문에 9월 15일 이전에 촬영을 마쳐야 했다. 하루도 여유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다만 “시간에는 쫓겼지만 돈에 쫓기지는 않았다. 돈을 마음대로 썼다는 뜻이 아니라 제작 환경이 좋은 편이었다. 넷플릭스와 함께한 덕분”이라며 “배우들도 내 작업 방식을 잘 이해했고 조인성과 조여정이 현장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줬다. 서로 돕고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작업했다. 나 역시 예전보다 조금 여유가 생기고 자유로워진 것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아이돌 출신 배우 조유리의 캐스팅 과정도 전했다. 그는 “다른 배우들과 똑같이 오디션에 참여했다. 생각보다 배우로서 마음이 열려 있었고 굉장히 적극적이었다”며 “외모가 닮았다기보다 미옥과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감성과 태도가 좋아서 캐스팅했다. 자신이 누구라는 의식이나 특별 대우를 바라는 태도가 전혀 없었다”고 칭찬했다.

국제 영화제의 주목을 받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지만, 이 감독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언급했다.

그는 “‘기생충’의 성공 때문에 착시가 있는 것 같다. 그런 대성공은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하는 일이고 앞으로도 쉽게 오기 어렵다”며 “아카데미가 여러 포용 정책을 쓰고 있지만 한국 영화에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 있다. 우리는 후발주자이고 베니스에서 공개된 지 이제 두 달 정도 지났다. 이제부터 뛰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도연의 연기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아직 전혀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상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 영화를 함께 만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평가와 보상을 받을 가능성은 열어둬야 한다. 한국 대표로 선정된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이 감독은 영화 제목인 ‘가능한 사랑’이 관객들에게 하나의 질문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이 제목은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가 이야기 안으로 들어오면서 제목이 정해졌다”며 “어려운 말은 없는데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질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랑’은 흔한 말인데 거기에 ‘가능한’이라는 말을 붙이니까 무엇이 가능한지를 묻게 된다. 그 질문 자체가 관객들이 영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소영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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