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 “박해일은 팽이, 이민호는 잘생긴 양동생”
‘한국 영화 누적 관객 수 1위’ 배우 유해진이 영화 ‘암살자(들)’로 추석 극장가를 찾는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영부인 저격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외출’, ‘덕혜옹주’, ‘천문: 하늘에 묻는다’, ‘보통의 가족’ 등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의 신작이다.
유해진은 영부인 저격 사건을 목격한 중부서 경감 철구 역을 맡았다. 박해일은 검열과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신문사 사회부 부장 재환을, 이민호는 재환과 함께 사건을 파고드는 신입 기자 영일을 연기했다.
유해진은 출연 이유를 묻자 “부담도 있었고 조심스럽게 시나리오를 읽었다. 읽고 난 뒤 제가 느낀 부분, 재미있다고 생각한 부분, 조심스러운 부분을 감독님께 구체적으로 말씀드렸다”며 “처음 받은 시나리오 그대로였다면 못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번 의견을 나눴고 제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감독님께서 받아주셨다. 수정을 거치면서 직접적으로 어떤 결론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열려 있는 작품이 됐다”며 “사건 자체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니 그 정도라면 괜찮겠다고 생각해서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지만, 캐릭터에 집중했다고 했다. 유해진은 “어느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하나의 작품으로 보고, 작품 안에서 캐릭터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그 인물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제 숙제지만 그 외의 부분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철구는 평범한 경찰에서 사건을 직접 목격한 뒤 점차 변화하는 인물이다. 유해진은 “눈앞에서 사건을 목격하고, 동료가 끌려가고, 자신도 자리에서 밀려나면서 억울함의 실체를 파고들게 된다”며 “감정 변화가 비교적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인물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캐릭터의 밀도가 좋았다”면서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사건을 접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좇아간다. 재환과 정보를 나누면서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도 밀도가 있어 좋았다”고 고백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박해일에 대해서는 특유의 진지함을 언급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유해진은 “박해일은 상당히 진지하다. 예전부터 그랬다”며 “‘자장면 먹을래, 짬봉 먹을래?’라고 물어도 ‘글쎄요, 형’이라면서 고민할 것 같은 사람”이라고 농담했다.
그는 “작품에도 굉장히 진지하게 들어간다. 두 사람의 과거 이야기를 저에게 굉장히 디테일하게 묻기에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 아니겠어? 더 들어가지 말자’고 했다”며 “저는 ‘뭘 그렇게까지 들어가나’ 싶은데 박해일은 끝까지 파고든다. 좋게 말하면 정말 진지한 배우”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 홍보를 같이 다니면서 가벼운 질문을 받아도 옆에서 혼자 심각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웃길 때가 있다”며 “이제는 그런 모습도 친근하고 재미있다”고 애정을 보였다.
박해일의 배우로서의 강점으로는 ‘눈빛’을 꼽았다. 유해진은 “영화를 보면서 다시 느꼈는데 박해일은 눈빛이 참 좋다. ‘이끼’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며 “제가 갖지 못한 부분이다. 이병헌이나 박해일을 볼 때 부러운 게 그런 눈빛”이라고 말했다.
유해진은 박해일을 ‘팽이’에 비유했다. 그는 “팽이가 힘을 받으면 꼿꼿하게 앞으로 가다가 벽에 부딪히면 튀어나가면서도 계속 돌지 않나. 박해일에게 그런 느낌이 있다”며 “꼿꼿함과 에너지가 있다. 제가 촬영하지 않았던 부분들을 영화로 보면서 ‘박해일의 에너지가 참 좋구나’ 싶었다”고 했다.
이민호를 향해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유해진은 “그전에는 그냥 스타인 줄만 알았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며 “처음 만났을 때 ‘선배님’ 하면서 굉장히 살갑게 다가오더라. 스타라는 이미지보다 한 인간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현장에서 만나보니 더 좋았다.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보여주는 인간적인 모습이 있었다”며 “‘스타만이 아니구나, 좋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로서도 굉장히 매섭고 똑똑하다. 겉모습에 가려진 진짜 모습이 많은 친구”라고 칭찬했다.
특히 이민호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던 일을 떠올리며 “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 점점 이민호라는 사람을 다르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홍보 일정에서 만나면 정말 반갑다. 잘생긴 양동생 같다”며 “연락이 와도 반갑고, 참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고 웃었다.
허진호 감독의 변신 역시 유해진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멜로와 감성적인 작품으로 강한 인상을 남겨온 허 감독이 긴장감 높은 시대극을 어떻게 완성할지 궁금했다고 했다.
유해진은 “감독님 하면 말랑말랑하고 감성적인 영화가 먼저 떠오르지 않나.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장르와 어떻게 호흡을 맞출까 궁금했다”며 “촬영할 때도 액션 장면인데 마치 감성 연기를 찍듯이 디테일하게 접근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는 ‘이게 과연 어떤 결과로 나올까’ 하는 물음표도 있었다.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중반까지 이어지는 밀도와 속도감이 놀라웠다”며 “현장에서 봤던 촬영 방식이 이런 결과로 이어지는구나 싶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특별출연을 포함해 여러 배우가 차례로 등장하는 구성에 대해서도 생각을 밝혔다.
유해진은 “유명한 배우들이 나와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늘 중요한 건 ‘이 역할에 정말 필요해서 이 배우를 쓰는가’라는 점”이라며 “저 역시 특별출연 제안을 받을 때 그런 걸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이번 작품에 등장한 배우들은 모두 필요에 의해 들어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의미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연기 생활 30년을 맞은 유해진은 최근 잇따라 받은 축하와 호평에 대해서도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30년이 됐다고 하더라. ‘벌써 그렇게 됐구나’ 싶었다”며 “요즘 축하를 많이 받았다. 상도 받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 영화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칭찬은 늘 부끄럽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수고했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주고 싶고, 선물도 해주고 싶다”며 “동시에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최근 백상예술대상에서 ‘왕과 사는 남자’로 영화 부문 대상을 받은 당시를 떠올리면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유해진은 “상을 받은 것도 좋았지만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유튜브 댓글도 봤는데 놀랄 정도였다”며 “내가 상을 받은 것을 마치 자기 일처럼 함께 기뻐해주는 글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는 사람마다 울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저 사람의 과거를 아니까, 지금까지 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라는 마음으로 같이 울컥해주신 것 같았다”며 “상을 받은 기쁨보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함께 기뻐해준다는 게 더 크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온 느낌이었다”고 울컥한 모습을 보였다.
흥행에 대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해진은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관객들이 점점 늘어나던 순간을 특별하게 기억했다.
그는 과거 ‘왕의 남자’를 언급하며 “정말 작게 출발했던 영화인데 관객의 힘으로 점점 커졌다. ‘관객들이 좋아해줘서 이렇게 늘어나는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던 작품”이라며 “‘왕과 사는 남자’도 관객들이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이 생기니까 100만 관객 때도 정말 좋아했다. 홍보 일정으로 강원도에 가는 버스 안에서 마치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처럼 다 같이 사진을 찍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고 웃었다.
설 연휴에 이어 또 다른 작품으로 추석 관객들을 만나게 된 그는 “부담도 된다. 사람들이 계속 지켜봐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럴 때 연기를 잘 못하면 돌아오는 것도 더 클 수 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진지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고백했다.
끝으로 그는 ‘암살자(들)’을 통해 관객들이 1974년의 사건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유해진은 “어떤 작품을 통해 전국의 사람들이 한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생기기도 하지 않나”며 “이 작품 역시 당시 사건에 남아 있는 물음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따뜻한 관심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