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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가만히 있고 싶다”던 김혜자, 무대인사 불참 후 “소녀들의 꿈도 기억해달라” 손편지

진향희
입력 : 
2026-10-16 13:25:00
6번 고사 끝에 출연… 9년 만 스크린 복귀작 ‘여전히 찬란하게’
“아픈 역사만이 아닌, 소녀들의 찬란했던 꿈 기억해달라”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에서 주인공 ‘순옥’ 역을 맡은 김혜자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에서 주인공 ‘순옥’ 역을 맡은 김혜자

“두 소녀를 그저 아픈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바라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배우 김혜자(85)가 친필 편지에 꾹꾹 눌러 담은 당부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다룬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로 9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그는 비극 속에서도 아름답게 살고 싶었던 소녀들의 마음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제작사 페이지원필름은 16일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에서 주인공 ‘순옥’ 역을 맡은 김혜자의 친필 편지를 공개했다. 김혜자는 전날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시사회 무대 인사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컨디션 난조로 불참했다. 대신 직접 관객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편지에 담아 전했다.

김혜자는 “우리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기억해야 한다”면서도 “그 아이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살고 싶어 했는지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썼다. 이어 “잊지 않고 마음에 품고 있으면 아주 오래 전의 작은 빛도 다시 우리를 비춰줄 수 있다고 믿는다”며 관객의 마음에도 작은 빛이 남기를 바랐다.

영화는 1942년 경상도의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순옥과 정임은 나무를 베고 풀뿌리를 캐는 고된 노동 속에서도 웃음과 꿈을 나누는 단짝 친구다. 하지만 전쟁의 폭력은 두 소녀의 일상을 무너뜨린다. 작품은 소녀 시절의 비극과 노년이 된 현재를 오가며, 인생의 찬란한 순간을 함께했던 두 친구가 6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김혜자는 전날 무대인사에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과 진심을 편지에 담아 전했다.
김혜자는 전날 무대인사에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과 진심을 편지에 담아 전했다.

김혜자가 연기한 ‘순옥’은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을 끝까지 간직하는 인물이다. 2017년 영화 ‘길’ 이후 9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지난해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이후 연기 활동을 더 이어가지 않으려 했던 김혜자는 송일곤 감독이 보낸 편지 한 통에 마음을 바꿨다.

김혜자는 송 감독의 편지에 담긴 “순옥은 울지 않습니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한 시간이 여전히 찬란하다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믿는 사람입니다”라는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슬픈 역사”라면서 “그래서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연출을 맡은 송일곤 감독은 김혜자가 65년간 쌓아온 연기 내공이 ‘순옥’이라는 인물에 깊이를 더할 것으로 봤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연민을 갖는 순옥의 시선이 중요했다”며 김혜자의 오랜 연기 여정이 인물에 투영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송 감독은 인물의 아름다웠던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클로즈업을 적극 활용했다. 그는 “김혜자 선생님의 클로즈업에는 큰 우주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대사 없이도 드러나는 시선과 미소, 작은 표정을 담아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혜자를 캐스팅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고 털어놨다. 당시 김혜자는 연기 활동을 내려놓고 쉬고 싶어 했다. 송 감독은 “선생님께서 집 앞에 있는 들꽃처럼 가만히 있고 싶다고 하셨다”며 “이 작품이 선생님을 통해 세상에 가닿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 오랜 시간 설득했다”고 말했다.

김혜자를 여러 차례 찾아가 식사를 함께하며 출연을 권했다는 송 감독은 “이 작품을 해야 할 명분을 갖게 해드리는 과정이 중요했다”고 돌아보며 “작품을 살펴보신 뒤에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수히 연습하셨다. 지독할 정도로 연습하시는 분이라 현장에 오셨을 때는 이미 그 인물이 돼 계셨다. 그 과정이 굉장히 감동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연기 인생 65주년을 맞은 김혜자가 ‘길’(2017) 이후 9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작품인 ‘여전히 찬란하게’는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함께한 단짝 친구를 6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순옥의 이야기를 그린다. 오는 2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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