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혹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이야기까지 무거울 필요는 없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독립운동이라는 소재까지 더해졌지만, ‘100일의 거짓말’은 시작부터 비장함을 앞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경쾌한 전개와 유쾌한 인물들을 앞세워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시대극의 무게는 덜어냈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은 출발이다.
오는 10일 오후 9시 10분 첫 방송되는 tvN 새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극본 류보리, 연출 유인식·김윤진)은 밀정이 된 경성 최고의 소매치기와 조선총독부의 엘리트 통역관이 적의 심장부에서 마주하며 벌어지는 100일간의 첩보 로맨스다.
1932년 경성을 배경으로 독립운동과 첩보, 로맨스를 한데 엮었다.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연출한 유인식 감독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집필한 류보리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김유정과 박진영을 비롯해 김현주, 이무생, 진선규 등이 출연한다.
‘100일의 거짓말’은 시작 전부터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있다. 당초 tvN 20주년 특별기획으로 준비됐던 ‘시그널2’의 편성이 불발되면서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됐기 때문이다. 유인식 감독은 “다른 드라마의 변동과 저희 작품은 상관이 없다”며 제작 일정에는 변동이 없었다고 선을 그었지만, 결과적으로 tvN 20주년 특별기획이라는 상징성과 기대까지 떠안게 됐다.
작품 자체가 지닌 부담도 만만치 않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은 자칫 비장함에 치우쳐 재미를 놓치기 쉽다. 반대로 대중성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역사적 비극을 가볍게 다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여기에 ‘100일의 거짓말’은 독립운동이라는 소재에 첩보와 로맨스까지 더했다. 서로 다른 장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관건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1회는 일단 이러한 우려를 덜어냈다.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시대와 소재를 경쾌한 터치로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첫 회는 경성역을 배경으로 주요 인물들을 한꺼번에 등장시키며 시작한다.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인물들이 같은 공간을 오가는 가운데, 이들을 연결하는 것은 경성 최고의 소매치기 이가경(김유정 분)이다. 이가경은 사람들 사이를 능숙하게 오가며 소매치기를 하고, 기차 특등칸에서 내린 사토 히데오(박진영 분)와 마주친 뒤 영어로 뒷담화를 하다가 들켜 민망해하기도 한다.
눈여겨볼 점은 인물들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주요 인물들이 경성역이라는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지만, 복잡하거나 산만하다는 느낌은 없다. 오히려 이가경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인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장황한 설명 없이도 인물들의 관계와 성격을 드러내며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높인다.
이후에도 이가경의 행보는 거침없다. 우연히 훔친 가방에서 총알을 발견하자 그 가치를 알아보고 더 많은 돈을 받아낼 궁리부터 한다. 급기야 사토 신이치(진선규 분)가 방문한 유필립(이무생 분)과 유소란(김현주 분)의 집에 안잠자기(식모)라고 신분을 속여 들어가 흥정까지 벌인다. 위험한 상황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돈을 벌 생각에 몰두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반면 같은 공간에 있는 유소란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구국단의 대의를 위해, 사적으로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 사토 신이치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이가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두 인물이 받아들이는 무게는 전혀 다르다. 이가경에게는 돈을 벌 기회지만, 유소란에게는 대의를 실현하고 복수를 완성하기 위한 중대한 순간이다. 이가경의 시선으로 보면 유쾌한 소동극이지만, 유소란의 시선으로 보면 목숨을 건 첩보극이다.
이처럼 ‘100일의 거짓말’은 서로 다른 욕망을 지닌 인물들을 한데 엮으며 극의 완급을 조절한다. 이가경의 능청스러운 행동이 웃음을 유발하는 동안에도 유소란을 둘러싼 긴장감은 유지된다. 독립운동이라는 대의를 앞세우기보다 인물들의 선택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대의 무게를 드러낸다. 무거운 이야기에 접근하는 문턱을 낮춘 셈이다.
이런 ‘경쾌한’ 시작의 중심에는 김유정이 있다. 김유정은 능청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연기로 극의 분위기를 이끈다. 거침없이 소매치기를 하다가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당황하고, 위험한 거래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가경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전작 ‘친애하는 X’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무엇보다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의 양아들이자 엘리트 통역관 사토 히데오 역을 맡은 박진영과의 비주얼 조합도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한 화면에 담기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직 본격적인 로맨스가 펼쳐지기 전이지만, 두 배우가 그려낼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앞으로 이가경이 조선총독부에 잠입하면서 작품은 더욱 묵직한 시대적 현실과 마주하게 될 전망이다. 구국단의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인물들과 총독부 내부의 갈등이 본격화되면 초반의 경쾌한 분위기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여기에 이가경과 사토 히데오의 로맨스도 남아 있다.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두 사람이 시대의 격랑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감정을 키워갈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물론 첫 회만으로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앞으로 이가경이 조선총독부에 잠입하면서 시대적 비극과 인물들이 감당해야 할 선택의 무게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여기에 이가경과 사토 히데오의 로맨스도 남아 있다.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두 사람이 시대의 격랑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감정을 키워갈지, 묵직한 시대적 현실과 설레는 로맨스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엮어낼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일단 첫걸음은 영리하다. ‘100일의 거짓말’은 시대극이 반드시 비장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서도 이야기의 본질을 놓치지 않았다.
김유정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와 박진영의 존재감, 서로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를 한데 엮어낸 연출까지 더해지면서 첫 회부터 시청자를 끌어들일 동력을 확보했다. 다만 16부작이라는 긴 호흡 속에서도 초반의 경쾌함과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무게를 덜어낸 출발이 끝내 묵직한 울림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