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극장가에 한국영화 4편이 잇따라 관객을 맞는다.
23일 개봉하는 ‘암살자(들)’, ‘타짜: 벨제붑의 노래’, ‘가능한 사랑’에 앞서 지난 16일 개봉한 ‘인턴’까지 가세했다. 역사적 사건의 미스터리를 파고드는 영화부터 포커판을 배경으로 한 범죄 오락물, 세대와 관계를 들여다보는 드라마, 직장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세대의 문제를 풀어낸 작품까지 색깔이 제각각이다.
한때 추석 극장가는 한국영화의 성수기로 통했다. 가족 관객이 함께 볼 수 있는 오락영화가 쏟아졌고, 명절 연휴 성적이 한 해 흥행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OTT의 확산과 관객의 극장 선택 기준 변화로 시장의 공식은 달라졌다.
이제는 유명 배우나 대형 제작비만으로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어렵다. 영화마다 ‘굳이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를 얼마나 분명하게 제시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이번 추석 대진표는 그런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소재로 실제 사건에 남은 의문을 미스터리 스릴러로 풀어냈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화투를 홀덤으로 바꾸며 20년 가까이 이어온 ‘타짜’ 시리즈의 마지막 승부에 나섰다. ‘가능한 사랑’은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설경구·조인성 등 배우들의 조합으로 인물과 관계에 집중한다. ‘인턴’은 최민식과 한소희를 앞세워 서로 다른 세대가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부딪히는 이야기를 그린다.
장르도, 관객에게 건네는 재미도 다르다.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진실에 관심이 있다면 ‘암살자(들)’, 빠른 전개와 도박판의 긴장감을 원한다면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깊게 들여다보고 싶다면 ‘가능한 사랑’, 세대 차이와 직장 이야기에 공감하고 싶다면 ‘인턴’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가져오되, 이미 알려진 결론을 재현하는 대신 기록에 남은 의문을 추적극의 동력으로 삼았다. 6발의 총성이 울렸지만 발견된 탄환은 4개뿐이었다는 설정부터 사건 현장의 수사 과정, 한일 수사 결과의 차이 등을 따라가며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흥행 승부처는 ‘역사를 얼마나 잘 아느냐’보다 미스터리 영화로서 얼마나 끝까지 관객을 붙잡느냐다. 역사적 사건에 관심이 많은 중장년층과 스릴러·추리물을 선호하는 젊은 관객을 동시에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가장 명확한 카드를 들고 나왔다. ‘타짜’라는 브랜드와 ‘마지막 편’이라는 상징성이다. 2006년 ‘타짜’ 이후 ‘타짜: 신의 손’, ‘타짜: 원 아이드 잭’으로 이어진 시리즈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이번에는 화투가 아니라 포커로 무대를 바꿨다. ‘타짜’ 특유의 한 방과 심리전이 홀덤에서도 통하느냐가 흥행 변수다. 변요한과 노재원의 팽팽한 연기 대결에 조우진까지 합류하면서 배우들의 힘은 충분하다. 반면 홀덤 규칙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게임 장면이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가능한 사랑’은 네 편 가운데 가장 결이 다르다. 역사적 사건도, 거대한 범죄도, 직장 코미디도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관계를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최근 제83회 베네치아(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전 세계 관객들을 만났고, 은사자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설경구·조인성·조여정이라는 배우 조합 자체가 영화의 가장 큰 관심사다. 장르적 쾌감보다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시선에 기대는 만큼 관객층이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갈릴 수도 있다.
16일 먼저 개봉한 ‘인턴’(23일 기준 47만명 동원)은 37년 직장생활을 마친 기호(최민식)가 패션 스타트업의 실버 인턴으로 들어가 젊은 CEO 선우(한소희)와 관계를 쌓아가는 이야기다. 원작의 기본 틀을 가져오면서도 한국의 직장문화와 세대 갈등을 녹여냈다. 은퇴와 재취업, 직장 내 세대 차이, 성공한 젊은 리더가 느끼는 압박 등 세대별로 다른 지점을 건드린다.
올해 추석 극장가의 승부처는 어느 한 편의 독주에만 있지 않다. ‘암살자(들)’은 역사 미스터리,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홀덤과 복수극, ‘가능한 사랑’은 관계와 감정, ‘인턴’은 세대 공감으로 서로 다른 관객을 겨냥한다. 장르가 겹치지 않는 만큼 한 작품이 관객을 독식하기보다 네 작품이 나란히 관객을 끌어모으는 ‘동반 흥행’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번 추석 흥행전은 누가 1위를 차지하느냐 못지않게, 네 작품이 침체된 극장가에 얼마나 많은 관객을 다시 불러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