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는 경계하되 역사적 무지는 면죄부 될 수 없어
광복절을 앞두고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수일째 뜨겁다. 해외 언론까지 이를 조명하며 수위가 높아지자 일각에서는 “조상의 잘못을 후손에게 묻는 연좌제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독립운동가 후손과 유명인들의 비판이 더해지며 논쟁의 전선은 점차 확대되는 모양새다.
여러 주장과 감정이 뒤엉킨 지금, 이번 논란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 정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연좌제에는 당연히 반대한다. 조상을 선택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증조부가 친일 행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증손녀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부당하다. 하영 역시 조상의 삶을 대신 짊어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번 논란의 본질은 단순히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데 있지 않다.
시작은 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하영은 방송에서 자신의 집안을 ‘4대째 의사 가문’이라 소개했다. 증조부가 일본에서 양의학을 공부한 뒤 개원했고, 고종 황제까지 진료했다는 이력을 자랑스럽게 꺼냈다. 과거에도 그는 여러 자리에서 증조부의 이력을 가족사의 자부심으로 언급해 왔다.
하지만 그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흐름은 급전직하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안상호는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해 서울에서 열린 추도 모임에 이름을 올렸다.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인 경성부협의원과 내선융화를 목적으로 한 대정친목회에 참여한 기록도 남아 있다.
비록 친일 행위의 적극성과 지속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으나, 강제 한일합방을 긍정하는 일종의 ‘홍보대사’ 역할을 한 역사적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외협실장 역시 “사전에 이름이 없다고 해서 친일 행적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여기서 연좌제와 이번 논란의 본질이 명확히 갈린다. 대중의 비판이 집중된 지점은 ‘친일파 증손녀의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이 자랑스럽게 소비했던 인물의 역사적 궤적을 정작 얼마나 알고 있었느냐는 ‘역사적 무지(無知)’에 대한 질문이었다.
일본 유학파, 고종 진료라는 화려한 훈장은 적극적으로 끌어다 쓰면서, 정작 그 인물이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는 사실에 비판이 쏠렸다. 자랑할 때는 ‘나의 귀한 가족사’였다가, 불편한 민낯이 드러난 순간 ‘나와 무관한 옛날 일’로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영 역시 이 지점을 정확히 인지했다. 그는 자필 사과문을 통해 “가족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며 “부끄럽게도 무지한 상태로 여러 자리에서 증조부 이야기를 자랑처럼 꺼냈다”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문의 내용이 보여주듯 하영은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대신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다. 역사를 알지 못한 채 자랑으로 삼았던 자신의 ‘경솔함과 무지’를 사과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후손에게 요구할 수 있는 책임의 정당한 한계다. 과거 선조의 친일 논란에 휩싸였던 다른 배우들 역시 대중의 평가를 갈랐던 것은 ‘후손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사실을 대하는 ‘현재의 태도’였다.
그러나 논쟁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반대편 역시 경계선을 다잡아야 할 때다.
하영이 무지를 인정하고 사과했음에도 연예계 안팎에서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비통함이나 제3자들의 공개적인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나라를 위해 전 재산을 바치고 가난을 대물림해야 했던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허탈함과 분노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다만 제3자들이 하나둘 얹히며 ‘누구 조상이 더 떳떳한가’를 따지고 도덕적 우위를 겨루는 경쟁으로 변질된다면 이는 또 다른 비극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오늘을 사는 개인을 자동으로 정의롭게 만들어주지 않듯, 친일 행적을 남긴 조상을 두었다고 해서 후손이 영원한 죄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선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가 그토록 경계했던 연좌제의 그림자가 다시 짙어진다.
하영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쏟아지는 화살이 아니라 뒤늦게 깨달은 역사의 무게를 잊지 않는 일이다. 진정성은 앞으로 그가 보여줄 삶의 태도로 증명하면 된다.
비판할 것은 정확히 비판하되, 책임지지 않아도 될 과오까지 떠넘기지 않는 것. 조상의 잘못은 후손의 죄가 아니지만, 그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일지는 현재를 사는 우리의 몫이다.
역사를 대하는 성숙함은 바로 그 정확한 경계를 지키는 데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