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말도 과하면 피로한데, 독설과 비아냥은 오죽할까.
8일, 가수 조갑경·홍서범 부부의 가족사를 둘러싼 갈등이 또다시 온라인을 달궜다. 전 며느리 A씨가 시부모를 향해 “뻔뻔하다”,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다”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간 것이다.
이번 논란의 출발은 분명 공감 가능한 분노였다.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혼인 파탄, 특히 임신 중 겪은 충격적인 상황은 대중의 즉각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법원 역시 1심에서 혼인 파탄의 책임이 아들 B씨에게 있다고 판단해 위자료와 양육비 지급을 명령했다.
다만 항소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법적 판단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사적 제재’의 방식은 분명 위험 신호다. SNS를 통한 공개 저격은 즉각 기사화되고, 여론은 매번 들끓는다. 아들의 잘못을 넘어 시부모의 인성 비하와 방송 하차 요구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폭로자는 일종의 ‘폭로 도파민’에 취한다. 말 그대로 ‘약발은 족족 먹히는’ 구조다.
처음에는 공감이 컸다. 이는 곧 조갑경·홍서범 부부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고, 이들을 향한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공인으로서 가족 서사를 예능 소재로 노출해온 만큼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할 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책임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 비난의 화살이 당사자를 넘어 주변인에게까지 무한 확장되는 순간, 사건의 본질은 흐려진다. 양육비 역시 판결에 따라 지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의 폭로는 해결이라기보다 감정의 반복에 가깝다.
이처럼 폭로가 이어질수록 분위기는 달라진다. 공감과 연민은 점차 옅어지고, 피로감이 그 자리를 채운다. 실제 온라인에서도 “처음엔 안타까웠지만 이제는 과하다”, “당사자 문제를 왜 부모에게까지 확장하느냐”, “안 줘도 난리, 줘도 난리”, “그래도 정도가 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공감이 지지를 넘어 피로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이제는 이성을 찾아야 할 때다. 지금 이 폭주는 무엇을 더 남기고 있는가. 무한에 가까운 폭로는 결국 피해자의 진심마저 희석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쉽게 잊히는 존재가 있다.
아이.
어른들의 싸움이 길어질수록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그 한가운데에 놓이는 건 언제나 아이다. 배우자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도, 이미 벌어진 갈등을 어떻게 마무리할지도 결국 어른의 몫이다.
하지만 그 결과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존재는, 애초에 아무 선택도 하지 않은 아이뿐이다.
그래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분노 표출은 오히려 역풍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이미 드러날 것은 충분히 드러났고, 대중의 관심 역시 정점을 지났다.
이제 남은 건 감정이 아니라 법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성과 감성 사이의 균형이다.
이 균형의 무게추는 비단 한 사람에게만 놓여 있지 않다. 폭로의 탈을 쓴 채 감정을 배설하며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상대측 역시 무리한 방송 노출이나 불필요한 사족으로 피해자의 억울한 심정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남’의 일이고 ‘콘텐츠’일지 모르나,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조부모라는 끊어낼 수 없는 뿌리이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억울함과 과함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저마다의 이성적인 멈춤을 고민해야 한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번. 특히 우리가 감정에 취해 눈과 귀를 닫고 있을 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