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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부터 ‘전원일기’까지…‘국민 배우’ 최불암, 영원히 기억될 이름

진향희
입력 : 
2026-10-30 07:25:15
수정 : 
2026-10-30 07:32:26
최불암. 사진 ㅣ스타투데이DB
최불암. 사진 ㅣ스타투데이DB

한국 드라마의 한 시대를 대표한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67년 가까운 연기 인생을 통해 한국 드라마의 역사를 함께 써온 원로 배우의 퇴장이다. 향년 87세.

30일 유족에 따르면 최불암은 전날인 29일 오후 10시께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길에는 아내인 배우 김민자와 자녀들이 함께했다.

고인은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해졌다. 2011년부터 14년간 진행한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도 하차하고 재활에 전념했다. 건강 회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상태가 악화하면서 끝내 시청자들과 다시 만나지 못했다.

1939년 인천 제물포구(당시 동구)에서 태어난 최불암은 처음부터 배우를 꿈꾸지는 않았다. 연출가를 지망했던 그는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연극 ‘햄릿’으로 무대에 섰다. 1965년 국립극단 단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TV 드라마 데뷔는 1967년이다. 서울중앙방송(현 KBS) 특채 탤런트로 발탁돼 ‘수양대군’에서 노년의 김종서를 연기했다. 당시 20대였지만 나이 많은 배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MBC 개국 드라마 ‘역풍’에서도 노인 역을 맡았으며, 이후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에서는 80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소화했다. 젊은 시절부터 배역의 나이를 뛰어넘어 인물의 삶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29일 오후 10시께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29일 오후 10시께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은 MBC ‘수사반장’이다. 1971년 첫 방송부터 박영한 반장으로 출연해 강직하면서도 인간적인 형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1984년까지 방송된 뒤 1985년부터 1989년까지 다시 이어진 이 작품은 한국형 수사 드라마의 대표작으로 남았다. ‘영원한 수사반장’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2024년 ‘수사반장 1958’에 특별 출연했을 때는 오랜 팬들에게 반가운 얼굴을 보여줬다.

1980년 시작해 2002년까지 22년간 방송된 MBC ‘전원일기’는 최불암을 국민 배우의 반열에 올린 작품이다. 양촌리 김 회장으로 출연한 그는 가족을 보살피고 이웃의 어려움을 살피는 가장을 연기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그의 일상적인 연기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 회장은 어느새 우리 사회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김혜자와의 호흡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개구리 남편’을 시작으로 여러 작품에서 부부로 만났고, ‘전원일기’에서 오랜 시간 함께했다. 실제 부부처럼 자연스러운 연기는 시청자들에게 가족의 정을 전했다.

최불암의 활동 무대는 드라마에만 머물지 않았다. ‘여명의 눈동자’, ‘그대 그리고 나’, ‘미망’, ‘영웅시대’, ‘궁’, ‘식객’ 등 다양한 작품에서 존재감을 드러냈고,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왕십리’, ‘바람 불어 좋은 날’, ‘기쁜 우리 젊은 날’에도 출연했다. 2018년에는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로 25년 만에 무대에 복귀했다.

1992년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에 합류해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96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에는 다시 연기 활동에 전념했다. 정주영 명예회장과의 인연은 드라마에서도 이어져 ‘야망의 25시’에서 청년 정주영을, ‘영웅시대’에서는 그를 모델로 한 천태산을 연기했다.

시청자와 만나는 방식도 달라졌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를 진행했고,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한국인의 밥상’을 이끌었다. 전국의 음식과 사람을 찾아다니며 한 끼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전했다. 유명 인사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귀를 기울이는 진행에는 배우로서 쌓아온 연륜과 사람을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특유의 호탕한 웃음도 대중의 기억에 남아 있다. 고개를 뒤로 젖히며 ‘파하~’ 하고 웃는 모습은 그의 상징이 됐다. 1990년대에는 그를 소재로 한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했고, 방송인들이 웃음소리를 따라 할 정도로 친근한 인기를 얻었다.

올해 5월 공개된 MBC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는 그의 60여 년 연기 인생을 돌아봤다. 재활 치료에 집중하고 싶다는 가족의 요청으로 직접 출연하지는 못했지만, 동료들의 기억과 작품을 통해 그가 남긴 시간을 되짚었다.

최불암이 걸어온 길은 한국 TV 드라마의 성장 과정과 겹친다. 수사반장으로 정의를 이야기하고, 김 회장으로 가족의 의미를 전했으며,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서로 다른 무대에서 그가 보여준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다.

화려한 스타보다 우리 주변의 아버지와 이웃에 가까웠기에 그의 연기는 오래도록 사랑받았다. 이제 박영한 반장과 양촌리 김 회장은 작품 속에 남았다. 한 시대의 안방극장을 지켜온 배우가 떠난 자리에는 그가 함께했던 수많은 저녁과 추억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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