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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X’ 수술대 오른 5·18…상처를 비췄나, 빌렸나 [돌파구]

김소연
입력 : 
2026-10-26 13:46:20
‘닥터X’ . 사진| SBS
‘닥터X’ . 사진| SBS

왜 하필 5·18이었을까.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날, 방영 중단 청원이 올라왔다.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다루면서다.

지난 24일 방송된 ‘닥터X’ 6회에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머리에 총상을 입은 오상범(하성광 분)의 사연이 그려졌다. 오상범은 머릿속에 남은 총탄 파편으로 수십 년간 통증과 발작에 시달렸고, 당시 형을 잃었다는 죄책감까지 안고 살아온 인물이다. 수술을 꺼리는 의료진 사이에서 계수정(김지원 분)이 나섰다. 극 후반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전직 대통령 지두석도 등장했다. 이 회차는 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 19.5%를 기록했다.

그러나 방송 당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방영 중단 청원이 올라오며 논란이 이어졌다. 청원인은 해당 에피소드가 기존 전개와 동떨어져 있고, 원작 일본 드라마는 의사 개인의 능력에 집중했다며 한국판의 5·18 설정을 “끼워 맞추기”로 규정했다. 제작진의 국회 증인 채택과 제작 과정 검증도 요구했다. 해당 청원은 사전 찬성 100명을 채워 공개 여부를 검토 중이다.

먼저 선을 그어둘 부분이 있다. 청원인은 정치 드라마가 아닌 모든 드라마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5·18 민주화운동은 특별법 제정과 국가기념일 지정을 통해 역사적 의미를 공적으로 인정받은 사건이다. 이를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편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역사적 아픔을 조명하려는 시도 자체는 의미 있다. 의학 드라마라고 해서 의료 현장 밖의 현실을 다루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물어야 할 것은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서사적 필연성이다. 왜 하필5·18 관련 에피소드가 ‘닥터X’에 필요했느냐는 것이다.

‘닥터X’ . 사진| SBS
‘닥터X’ . 사진| SBS

한국판 ‘닥터X’는 처음부터 일본 원작에 없는 한국의 의료 현실을 서사에 녹여냈다. 격무에 쓰러진 응급구조사가 수술할 의사를 찾지 못해 사망하는 에피소드에 낮은 의료수가와 인력난을 연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원작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5·18 설정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

5·18 에피소드 역시 다른 의료진이 꺼리는 고위험 수술에 계수정이 나서는 구도를 따른다. 모두가 외면하는 일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홀로 해내는 ‘판타지적 히어로’를 부각하는 ‘닥터X’ 특유의 문법이다.

문제는 이 구조 안에서 5·18이 어떤 자리에 놓이느냐다. 오상범이라는 개인의 사연 뒤에는 수많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역사적 아픔이 있다. 이 비극이 주인공의 능력을 증명하는 배경에 머문다면, 역사는 극적 장치로 소비될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오상범이 꼭 5·18 피해자여야 했는지 되묻게 된다. 다른 의료진이 수술을 꺼리는 상황은 다른 방식으로도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전직 대통령 지두석까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다.

향후 지두석의 치료를 둘러싼 갈등이 ‘의사는 가해자도 살려야 하는가’라는 의료 윤리의 질문으로 이어진다면 5·18을 선택한 이유도 분명해질 수 있다. 반대로 극적 충격을 위한 장치에 그친다면 소재 선택의 설득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제작사 스튜디오S의 이옥규 책임프로듀서(CP)는 방송 당일 자신의 SNS에 ‘닥터X’ 포스터와 함께 ‘NO FEAR(두려움 없다)’라는 문구를 게시했다. 논란을 의식한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지만, 구체적인 의미는 밝히지 않았다. SBS 역시 5·18 에피소드의 기획 의도를 묻는 질의에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물론 창작물이 소재를 선택할 때마다 작품 밖에서 이유를 설명할 의무는 없다. 작품은 작품으로 말하면 된다. 다만 지금까지 나온 것은 ‘두려움 없다’는 짧은 문구 하나뿐이다. 왜 5·18이었는지, 왜 5·18이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직 작품 안에서도, 밖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그 답은 작품 밖의 설명으로든, 작품 안의 서사로든 제시돼야 한다.

역사적 아픔을 조명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 자체가 서사적 필연성까지 담보하진 않는다. ‘닥터X’는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오상범과 지두석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왜 굳이 5·18이었는가’라는 질문의 답도 달라질 것이다. 창작의 자유는 소재를 선택할 권리이지만, 그 선택을 설득하는 일 역시 창작의 일부다.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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