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배우 김지원의 연기는 호평받고, 시청률은 거침없이 치솟고 있다. 그러나 정작 드라마 속 ‘상식’이 흔들리고 있다. 방송 2회 만에 시청률 14.9%를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SBS ‘닥터X’의 아이러니다.
지난 9일 첫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는 천재적인 수술 실력을 갖춘 외과의사 계수정(김지원 분)이 의료계의 부조리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첫 방송에서 전국 시청률 11.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한 데 이어 2회에서는 14.9%까지 치솟았다. 단 한 회 만에 3.5%p 상승한 수치다. 김지원 역시 냉철하고 거침없는 천재 외과의사로 변신해 극을 이끌며 호평받고 있다. 특히 병원 내 권위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으로 부조리를 돌파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안겼다.
하지만 흥행과 별개로 의료 고증과 작품 설정 자체를 둘러싼 잡음이 커지고 있다. 드라마 첫 장면이었던 서혜부 탈장 환자의 응급수술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부터 담낭암 환자의 수술 방식과 의료진의 대처, 병원 내부의 모습까지 실제 의료 현장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 드라마에 실제 병원과 똑같은 현실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극적 재미를 위해 인물을 과장하고 상황을 각색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병원 조직의 현실을 다르게 그리는 것과 질병의 특성, 진단과 치료의 기본 원리를 잘못 묘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전자가 극적 허용이라면 후자는 작품의 신뢰도를 흔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의학 자문에 참여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 교수의 발언도 주목받았다. 남궁 교수는 SNS를 통해 의학적으로 틀린 부분이 있다면 자문과 제작진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자문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면 된다는 취지의 답변을 남겼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정현정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닥터X’에 대해 “핍진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드라마 속 의료 행위뿐 아니라 병원 내부의 모습과 의료진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첫 장면인 서혜부 탈장 환자의 수술 장면을 일례로 꼽았다. 극 중에서는 응급수술이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급박하게 그려졌지만, 현실의 치료는 다르다는 것이다.
정 전문의는 “서혜부 탈장은 응급실에서 수기 정복이 가능한 경우, 환자 상태에 따라 외래 진료를 통해 수술 날짜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수기 정복이 되지 않거나 감돈·교액 상태로 응급 처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응급수술을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병원 내부의 묘사 역시 도마에 올랐다. 수십 명의 의료진이 참석하는 회의 장면이나 수술 방식을 둘러싼 갈등, 병원장의 권위적인 태도 등도 현실과 거리가 있었다.
정 전문의는 “20년 전 제가 의과대학에 다닐 때도 이미 나이 많은 교수들이 복강경으로 담낭 수술을 했다. 복강경 수술이 표준화 되었는데, (드라마는) 몇 년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천재 의사 한 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설정은 드라마적 쾌감을 줄 수 있지만 현실의 의료는 여러 의료진의 협력과 판단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 전문의는 “의료는 의사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다른 직역과의 협업은 물론 의료진 간 의사소통도 중요하다”며 “수술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동료들과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의료 행위를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그가 가장 우려한 것은 의사의 ‘실패’를 바라보는 드라마의 시선이다. ‘닥터X’를 상징하는 대사 중 하나는 “저는 실패하지 않습니다”다.
절대적인 수술 실력을 가진 천재 의사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말이지만, 현실의 의료 현장에서는 결코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더라도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고, 예상치 못한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고 해서 반드시 의료진의 과실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 전문의는 “의사는 수많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 그걸 통해 배우는 것이다. 실패 없이 크는 의사는 없다”며 “의사가 잘하고 못해서 환자가 살고 죽는 것이 아닌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제일 위험한 건 이 부분인 것 같다. 아무리 히어로물이라고 해도 현실의 의사들은 왜 실패하고 잘못하는 일이 많으냐는 시선이 은연중에 각인될까 겁이 난다”고 우려했다.
드라마가 의료계를 거대한 기득권 집단으로 묘사하는 방식에도 비판을 제기했다.
정 전문의는 “대학병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노동자다. 그렇게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심지어 최근엔 교수를 하려는 사람도 부족한 실정이다. 의료계를 이기적인 이익집단으로 바라보는 시선에는 익숙하지만, 직역 전체를 혐오의 대상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를 패는 포르노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더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물론 의료계의 권위주의나 비리를 드라마의 소재로 삼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실제 의료 현장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것도 창작의 자유에 속한다. 다만 일부의 문제를 직업군 전체의 특성처럼 일반화하거나, 극적 쾌감을 위해 의료진을 일방적인 비난의 대상으로 소비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냥 드라마로 보라”는 반응도 있지만, 정 전문의는 선을 그었다. 그는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현실을 인지하는 방식은 은연중에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아쉽다”고 덧붙였다.
‘닥터X’가 보여주는 통쾌함은 분명 매력적이다. 부조리한 권력에 굴하지 않는 주인공과 거침없는 전개, 이를 설득력 있게 소화하는 김지원의 연기는 초반 흥행의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높은 시청률이 작품의 모든 허점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의무가 없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그 세계를 납득시킬 책임도 있다. 특히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를 소재로 삼았다면 더욱 그렇다.
김지원의 연기가 시청자를 수술실로 끌어들였다면, 그 세계를 끝까지 믿게 만드는 것은 제작진의 몫이다. 판타지 같은 천재 의사는 가능하다. 그러나 그가 마주하는 질병과 치료,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의료진의 모습까지 판타지가 돼서는 곤란하다.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