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이 먼저 웃었다. ‘닥터X’는 2회 만에 시청률 14.9%를 기록하며 15% 돌파를 눈앞에 뒀고, 같은 주말 출격한 김유정의 ‘100일의 거짓말’도 7.6%까지 오르며 추격에 나섰다. 시청률 격차는 약 두 배에 달하지만, 두 작품 모두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말 안방극장 흥행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지난 9일 첫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는 1회 시청률 11.4%(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로 쾌조의 출발을 알렸다. 이튿날 방송된 2회는 14.9%까지 올라 15% 돌파를 눈앞에 뒀다. 한 회 만에 3.5%p 상승했으며, 최고 시청률은 17.4%에 달했다. 2회 만에 토요일 미니시리즈 시청률 1위에도 올랐다.
지난 10일 첫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은 1회 5.3%(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로 출발해 2회에서 7.6%를 기록했다. ‘닥터X’와의 격차는 작지 않지만, 한 회 만에 2.3%p 상승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다만 지상파와 케이블이라는 매체 환경에 차이가 있어 수치를 단순 비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두 작품을 향한 기대가 컸던 데는 주연 배우들의 존재감도 한몫했다. 특히 김지원에게 ‘닥터X’는 최고 시청률 24.9%를 기록하며 신드롬급 인기를 누린 ‘눈물의 여왕’ 이후 약 2년 6개월 만의 안방극장 복귀작이다. 당시 재벌 3세 홍해인 역으로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이번에는 냉철하고 거침없는 외과의 계수정으로 변신했다. 전작의 흥행 부담을 안고 출발했지만, 첫 주 성적만 놓고 보면 더할나위 없는 성공적인 복귀다.
일본 인기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닥터X’는 의료계의 부조리를 깨부수는 사이다 전개를 앞세웠다. 계수정은 조직의 권위와 관행에 굴하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인물이다. 김지원은 절제된 표정과 거침없는 언행으로 캐릭터의 매력을 살렸다. ‘눈물의 여왕’에서 애틋한 감정선으로 시청자들을 울렸다면, 이번에는 강단 있는 캐릭터로 통쾌함을 안겼다. 선명한 인물 설정과 빠른 전개가 맞물리며 초반부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다만 방송 직후 일부 의료 장면을 둘러싼 고증 비판도 제기됐다. 서혜부 탈장 환자를 응급 수술로 보내는 과정, 혈압이 측정되지 않는 위급 환자에 대한 처치, 심정지 환자에게 제세동을 시행하는 장면 등이 도마에 올랐다. 의료계 종사자를 비롯한 일부 시청자들은 실제 의료 현장의 판단과 처치 방식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장 자문으로 참여한 응급의학과 남궁인 교수에게는 관련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 누리꾼이 “의학 자문하신 거 맞죠?”라고 묻자 남 교수는 “네. 저는 현장 자문이었습니다”라고 답한 뒤 “의학적으로 틀린 부분이 나온다면 자문이랑 제작진이랑 싸우다가 자문이 패배한 걸로 보시면 됩니다”라고 덧붙였다. 제작진은 자막을 통해 작품이 픽션이며 극적 전개를 위해 실제 의료 현장과 다르게 각색한 장면이 포함돼 있다고 안내했다.
물론 드라마가 실제 의료 현장을 완벽하게 재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료 현장을 주요 배경으로 내세운 만큼 현실과의 괴리가 반복된다면 작품의 설득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현재까지 고증 비판이 시청률 상승세에 제동을 건 모양새는 아니지만, 장기 흥행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다. 일본 원작의 설정을 한국 의료 현실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여내느냐도 관건이다.
김지원이 화려하게 출발했다면, 김유정은 차근차근 추격하고 있다.
김유정은 아역 시절부터 쌓아온 탄탄한 연기 내공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전작 ‘친애하는 X’에서는 아름다운 얼굴 뒤에 잔혹한 본성을 감춘 백아진 역으로 파격적인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이번에는 1932년 경성을 누비는 소매치기이자 밀정 이가경으로 분해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100일의 거짓말’은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이라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시작부터 비장함을 앞세우지 않았다. 경쾌한 전개와 개성 있는 인물들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면서도 시대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 시대극의 무게는 덜어냈지만, 이야기까지 가볍지는 않은 영리한 출발이었다.
2회에서는 이러한 강점이 더욱 선명해졌다. 유소란(김현주 분)이 주도한 암살 작전이 예상치 못한 변수와 맞닥뜨리며 긴장감을 높였고, 13년간 행방을 알 수 없었던 남편 금석중(감우성 분)의 정체와 유소란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인물들의 서사도 깊어졌다. 독립운동과 복수라는 이야기의 큰 줄기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이가경과 사토 히데오(박진영 분)의 관계도 흥미를 더했다. 암살 사건 이후 이가경을 감싸준 사토 히데오는 방송 말미 종로 전당포에서 그와 다시 마주쳤다. 도망치려는 이가경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잡았다, 소매치기”라고 속삭이는 장면은 긴박한 첩보극에 로맨스의 설렘을 더했다.
김유정 역시 능청스러운 소매치기의 모습부터 위기 앞에서 기지를 발휘하는 모습까지 다채롭게 소화하며 극의 중심을 잡았다. 첩보와 복수, 로맨스를 자연스럽게 엮어내며 초반부터 몰입도를 높였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방송된 2회 동안 작품의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역사적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는 만큼 신중함이 요구된다. 작품이 그리는 1932년은 일제강점기, 국권을 빼앗긴 민족의 아픔이 있던 시대다. 특히 2회에서 드러난 유소란의 과거를 통해 당시의 비극을 인물 개인의 아픔으로 끌어온다. 13년 전 만세운동 당시 딸을 잃었다는 설정은 단순한 복수의 동기를 넘어 민족이 겪었던 고통을 환기한다. 실제 역사의 상처를 극적 서사의 동력으로 삼은 만큼,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시대의 아픔을 반드시 무겁게만 그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반의 경쾌함은 기존 시대극과 차별화되는 강점이다. 다만 시대극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과 역사의 무게를 가볍게 다루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앞으로 본격화될 독립운동과 첩보전에서 이 균형을 지켜내느냐가 작품의 평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두 작품이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방식도 다르다. ‘닥터X’가 계수정이라는 강력한 캐릭터를 앞세워 즉각적인 쾌감을 선사한다면, ‘100일의 거짓말’은 이가경과 사토 히데오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이다. ‘닥터X’에서 병원 내 부조리에 맞서는 주인공의 활약이 돋보인다면, ‘100일의 거짓말’은 첩보와 로맨스가 맞물리며 인물들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두 작품 모두 초반의 관심을 장기 흥행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 ‘닥터X’는 이미 제기된 의료 고증 비판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100일의 거짓말’은 역사적 서사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풀어낼지가 관건이다. 전작의 성공이 신작의 흥행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배우의 이름값을 넘어 작품 자체의 완성도로 시청자들을 붙잡아야 한다.
주말 안방극장 먼저 승기를 잡은 것은 김지원이다. 강력한 캐릭터를 앞세운 ‘닥터X’가 독주를 이어갈지, 첩보와 로맨스를 본격화한 ‘100일의 거짓말’이 뒷심을 발휘할지 관심이 쏠린다.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