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규리(29)가 ‘포핸즈’를 통해 한 뼘 더 성장했다. 17세 소녀부터 27살까지 한 인물의 긴 서사를 연기하며 대본에 그려지지 않은 시간까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채워나갔다.
지난 4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포핸즈’(극본 신이원, 연출 박현석 허석원)는 음악 천재들만 모인 예술고등학교에서 만난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 경쟁과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장규리는 최근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만나 ‘포핸즈’에 대해 “정말 열심히 촬영했는데 많은 분들의 사랑이 느껴져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포핸즈’에서 장규리가 연기한 홍재인은 비올라를 전공한 학생이자 남다른 음악적 감각을 지닌 인물이다. 17세부터 27세까지 10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천재 피아니스트 강비오(송강 분), 최정요(이준영 분)와 긴 인연을 이어간다.
1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야 했던 만큼 고민도 컸다. 특히 작품에서 직접 그려지지 않은 17세와 27세 사이의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가 관건이었다.
“17살과 27살 사이 10년이 그냥 비어 있잖아요. 대본에는 없는 시간이니까 제가 상상하면서 많이 채워 넣으려고 했어요. 사람의 기질이나 성향이 10년이 지난다고 완전히 변하는 건 아니니까 연결감은 가져가되, 그동안 다양한 일을 겪고 성숙했을 테니 20대 재인에게는 조금 더 성숙한 느낌을 주려고 했죠.”
의외로 어려웠던 것은 10대 재인이었다. 장규리는 “많은 분들이 10대 연기가 더 쉬울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10대 재인이가 더 어려웠다”며 “제가 가진 목소리가 중저음인데 10대 때는 톤도 많이 올렸다. 쨍한 소리를 내려고 했다. 극 안에서 재인이가 거의 유일하게 밝은 에너지를 가진 인물이었으니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혼자 갑자기 너무 밝으면 튀니까 감독님께서 조절을 많이 해주셨다”고 덧붙였다.
헤어스타일에도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 극 중 10대 재인이 착용했던 헤어밴드와 머리핀, 땋은 머리 등의 시안을 장규리가 직접 찾아 제작진과 의견을 나눴다. 또 교복도 오랜만에 입었다. 그는 “부끄럽기도 했고 괜찮을까 걱정도 됐다”며 웃었다.
“감사하게도 아직까지는 교복 차림이 괜찮다고 해주시더라고요.(웃음)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해보려고요. 써주실 때까지는 입어보겠습니다. 교복 자체도 정말 예뻤어요. 의상이 주는 힘이 있다 보니 밝은 재인을 표현하는 데도 도움이 됐고요.”
비올라 연주에도 욕심을 냈다. 제작진은 대역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장규리가 직접 연주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장규리는 “원래 재인이가 비올라 연주 실력으로 뛰어난 친구는 아니지만, 대역으로 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셨다. 그런데 제가 직접 하고 싶어서 비올라를 구해달라, 레슨을 시켜달라고 졸랐다. 그래서 두 달 정도 배우고 촬영에 들어갔다”고 이야기했다.
장규리는 과거 바이올린을 약 3년간 배운 경험이 있었지만 비올라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그는 “아예 처음 배우는 분들보다는 빨리 배우긴 한 것 같다. 그런데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다르더라. 크기도 더 크고 왼손으로 짚는 간격도 달랐다. 악보 보는 법도 달라서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다”며 “더 보여드릴 수 있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노력한 걸 보여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덧붙였다.
홍재인은 연주 실력 자체보다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는 뛰어난 귀를 가진 인물이다. 장규리에게는 그런 재인의 능력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재인이가 비올라 연주 실력으로 빛나는 친구는 아니잖아요. 대신 탁월한 귀라는 자기만의 강점이 있어요. 그 음악적 감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매니지먼트라는 일에 승화시키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홍재인의 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강비오를 향한 오랜 마음이다. 어린 시절부터 비오를 좋아해온 재인은 성인이 된 뒤 그의 매니저가 돼 곁을 지킨다. 비오에게 마음을 거절당한 뒤에도 그의 매니저로 남는다.
그는 “비오에게 이별을 당했다고 해서 매니저까지 그만두는 건 오히려 재인답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사랑 때문에 자기 삶이 무너지거나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기 일을 계속하는 모습이 멋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장규리 역시 재인과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 같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계기로 시작한 일이라 해도 오랜 시간 해왔다면 그 일 자체에 대한 애정이 생겼을 것이고, 사적인 감정과 별개로 자신의 책임을 다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장규리에게도 처음에는 의문이 있었다. 대체 비오의 어떤 점이 재인을 20년 가까이 그의 곁에 머물게 했을까. 궁금증은 대본 리딩을 마친 뒤 작가에게 직접 물어볼 정도였다.
그는 “저도 너무 궁금해서 작가님께 ‘재인이는 비오의 어떤 점을 그렇게 좋아하나요?’라고 물어봤다”며 뒷 이야기를 들려줬다. 작품에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두 사람의 과거사가 있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린 재인이 비오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위로받았다는 설정이었다. 장규리는 이를 토대로 재인의 마음을 단순한 짝사랑 이상으로 해석했다.
그는 “남자로서 비오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음악으로 위로받은 경험이 있는 것”이라며 “자신이 받았던 위로를 다른 사람들도 비오의 음악을 통해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오는 뛰어난 재능이 있지만 가족과 관련한 아픔도 있지 않나. 재인이가 정신적인 안전기지가 되어준다면 그 재능을 펼칠 수 있을 거라는 안쓰러움도 있었을 것”이라며 “남자로서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그렇게 오래 곁에 있기 어려웠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눌러왔던 재인의 감정은 비오에게 거절당한 뒤 차 안에서 홀로 우는 장면에서 폭발했다. 장규리는 작품 안에서 재인의 오랜 사랑이 충분히 그려지지 않은 만큼 이 장면에서만큼은 감정을 최대한 숨기지 않으려 했다.
특히 서럽게 ‘뿌앵’ 하고 우는 모습은 장규리의 선택이었다. 그는 “재인도 결국 스물일곱 살일 뿐이고, 쌓였던 감정이 확 터지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그 장면에서는 예뻐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진짜 제가 울 때처럼 울어서 완성된 장면을 보고 저도 좀 당황했다”며 “가족들이 ‘너 진짜 어릴 때 울던 것처럼 울더라’고 했다. 재인에게 촘촘한 서사가 모두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부분을 연기로 잘 채워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시청자들도 재인의 오랜 짝사랑에 깊이 몰입했다. 평소 SNS와 팬 커뮤니티를 통해 반응을 챙겨본다는 장규리는 “10부에서 재인이가 차이고 나서는 ‘언니 그 남자랑 사귀지 말고 나한테 와’라는 반응이 정말 많았다”며 웃었다.
그는 “진짜 친구에게 ‘그런 남자 만나지 마’라고 하는 것처럼 재인이를 안쓰러워해주시더라”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 신기했다”고 감사 한 마음을 드러냈다. ([인터뷰②]에 계속)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