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사미자, 김관수 부부가 일제 강점기 해방 전후를 언급했다.
최근 사미자의 유튜브 채널에는 ‘“김구 선생님을 실제로 봤습니다” 70년이 지나도 생생한 기억’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이날 사미자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고통을 많이 겪고 오늘날까지 왔는지. 내가 전쟁을 얼마나 많이 겪고 지금까지 살아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거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김관수는 “그때가 8살이었다. 고향 강화도에서 해방을 맞았다”며 “우리 집이 인근에서 해방 소식을 제일 먼저 알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아버지가 돈을 들여 우체국을 지었고 우체국장을 하셨다. 당시 강화 전체에 두세 대밖에 없던 전화도 있었다. 유일한 통신수단이 우리 집에 있었던 것”이라며 “내 기억으로 오후 1시쯤이었다. 아버지가 우체국에서 뛰어 들어와 어머니에게 급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해방이 뭔지는 몰랐지만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학교생활에 대한 기억도 꺼냈다. 김관수는 “맨날 일본 사람들에게 굽신대다가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진 것 아니냐. 일본 사람들의 허가 없이는 아무것도 못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일제강점기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학교에서는 철저하게 일본어를 가르쳤고 한국어를 쓰면 안 됐다”며 “한국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걸 들키면 벌을 서고 부모님에게도 주의를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말이 먼저 나오는데 그게 쉽게 되겠나. 그런데 계속 일본어를 쓰게 하니 또 되더라”며 “해방이 되자 바로 한글로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광복 직후 마을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친일을 한) 죄가 아주 큰 사람들은 곤욕을 치렀다”면서도 “다 동네 사람들이니 심하게 할 수는 없지 않았겠느냐”고 덧붙였다.
사미자 역시 “일본 순사 중 거의 반 이상은 조선 사람이었다. 한국말을 다 아니까 ‘저 사람이 독립운동을 하는구나’ 하는 걸 다 일렀다”며 “그런 일이 한두 건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1949년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했을 당시를 떠올렸다. 사미자는 “해방되고 얼마 안 돼 김구 선생님이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라디오에서 계속 나왔다”며 “어린 마음에도 ‘내가 어떻게 문상을 해야 하나’, ‘그런 훌륭한 분을 왜 죽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 살짜리가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사미자는 직접 김구 선생을 조문하기 위해 경교장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경교장에 딱 들어가니 시신이 높은 제단에 모셔져 있었고 얼굴이 보였다”며 “내가 90도로 인사를 드리면서 ‘역사의 한 장면을 보고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사미자는 “서대문 길거리에 운구 행렬이 지나갔다. 거기까지 따라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