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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가 좋은 사람을 증명하진 않더라 [연예기자24시]

한현정
입력 : 
2026-10-01 17:33:37
‘암살자(들)’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①
사진 I 하이브미디어코프
사진 I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는 사람과 별개일 수 있을까. 적어도 기자는 그래야 한다고 믿어왔다. 사람에 대한 호오(好惡)가 작품을 판단하는 잣대가 돼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이 글은 조금 어렵다.

기자가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를 처음 제대로 마주한 건 영화 ‘하얼빈’ 개봉을 앞두고서였다. 그보다 먼저 이름은 익히 들었다. 썩 좋은 이야기만 들려오는 영화인은 아니었다. 일을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영화에 대한 집요함을 높이 사는 이들도 있었지만, 독선적인 일 처리와 거친 언행, 함께 일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지적하는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마침내 왕좌에 올랐다.

외화 수입·배급에서 출발한 김 대표는 2014년 하이브미디어코프를 설립해 ‘내부자들’, ‘덕혜옹주’, ‘곤지암’, ‘남산의 부장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을 내놨다. 한국 영화계가 긴 침체에 빠진 사이에는 ‘서울의 봄’을 천만 영화 반열에 올려놓았고, ‘핸섬가이즈’, ‘하얼빈’, ‘야당’까지 장르도 몸집도 다른 영화들을 쉬지 않고 만들었다.

거장들이 흔들리고 대형 투자·배급사마저 좀처럼 새 영화를 내놓지 못하는 사이, 한때 충무로 변방에 가까웠던 제작자는 어느새 정중앙에 서 있었다.

그쯤 만난 터라 김 대표에게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하얼빈’을 흥행 성적으로 재단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를 다루는 영화 앞에서 돈과 스코어를 먼저 말하는 것 자체가 작품의 뜻을 훼손한다는 취지였다.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목소리는 뜨거웠고, 눈시울도 붉어졌다.

영화를 업으로 삼은 사람의 진심처럼 보였다.

기자 역시 당시 그를 ‘요즘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핫한 제작자’라고 소개했다. ‘서울의 봄’의 성공을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었고, 중·저예산 영화부터 대작까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감각과 추진력 역시 인정할 만했다.

다만 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인터뷰 한 번보다 시간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한 번은 황당한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영화 ‘소방관’이 기대 이상의 흥행을 이어가던 무렵이었다. 비슷한 시기 하이브미디어코프 작품들의 성적을 두고 기자는 늘 하던 대로 수치와 시장 상황을 기사로 썼다. 그러자 김 대표가 기자와 ‘소방관’ 배급사의 관계를 의심하는 취지의 말을 여러 곳에서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사실무근이었다. 해당 배급사 관계자를 개인적으로 알지도, 만난 적도 없었다. 당연히 금전적 이해관계도 없었다.

김 대표 측에 불쾌하다는 뜻을 전했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금전 관계를 입에 올린 이야기가 당사자의 귀에까지 들어왔다면 더 이상 가벼운 뒷이야기는 아니라고.

이후 하이브미디어코프의 ‘야당’ 개봉을 앞두고 또 묘한 이야기가 들렸다. 이미 사이가 틀어졌으니 기자가 자신의 영화를 좋게 평가할 리 없다는 취지의 말을 주변에 했다는 것이다.

예상은 틀렸다. ‘야당’은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썼고, 잘 만든 오락영화라고 평가했다. 사람에 대한 불쾌감과 영화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얼마 뒤 김 대표에게 늦은 밤 생일 축하 메시지가 왔다. “기사 잘 봤습니다”라는 말도 함께였다.

기자는 그제야 직접 말했다. 서로 하는 일과 입장이 다르니 때로 감정이 상할 수는 있지만, 그 감정 표현에도 지켜야 할 선은 있지 않겠느냐고. 그러면서 “저 또한 마음이 많이 상했으나, 작품은 그 감정과는 별개로 본 대로 작성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해당 이야기를 “전달하라고 얘기한 적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이유라도 마음이 안 좋으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다”고 했다. 사과는 받았다. 다만 정작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끝내 선명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그의 영화는 계속됐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더 많은 스타가 모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하이브미디어코프의 첫 영화 ‘내부자들’의 주연은 당시 사생활 논란으로 배우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던 이병헌이었다. 촬영 중 논란이 불거졌지만 영화는 흥행했고, 그의 압도적인 연기는 다시 관객을 설득했다.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에서는 장동건이 오랜만에 스크린 주연으로 돌아왔다. 그 역시 앞서 사생활 논란을 겪은 뒤였다.

정우성은 경우가 다르다. ‘메이드 인 코리아’ 캐스팅은 혼외자 논란이 불거지기 전에 이뤄졌다. 다만 이후 논란에도 작품은 예정대로 진행됐고 제작사 측은 사생활 영역이라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그리고 ‘암살자(들)’에서는 이 풍경이 한층 선명해졌다. 엄태웅, 배성우, 오달수, 정우성 등 각기 다른 사회적 논란을 거쳤던 배우들이 조·단역 또는 특별출연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이들의 과거를 하나로 묶을 수는 없다. 형사 사건과 사생활 문제는 엄연히 다르고, 각각의 잘못과 책임 역시 같지 않다.

그럼에도 ‘왜 굳이 이 배우들이어야 했느냐’는 질문은 나왔다.

허진호 감독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개봉 전 인터뷰에서 해당 캐스팅을 두고 “많은 고민이 있었던 부분”이라며 비판 역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우들이 잇따라 출연에 응한 것을 두고 “제작사의 아우라 때문인지”라는 표현까지 썼다.

묘한 말이었다.

김원국의 영화에는 유독 ‘두 번째 기회’를 얻는 배우들이 눈에 띈다. 물론 우연일 수 있다. 연기력과 캐릭터만을 보고 내린 선택일 수도 있다. 한 번의 과오나 사생활 논란이 배우의 직업적 생명까지 영원히 끝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일 수도 있다.

그 선택 자체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은 풍경이 여러 번 반복되면 질문 정도는 남는다.

‘김원국이라는 제작자는 왜 타인의 과거에 유독 관대한 걸까.’

그리고 공교롭게도 1일, 김 대표 자신의 과거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매일신문이 법원 판결문을 토대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김 대표는 2015년 혈중알코올농도 0.143% 상태로 약 5㎞를 운전하다 사고를 냈고,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구속됐다. 2심에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그에게 음주·무면허 운전 등으로 벌금형 4회와 징역형 집행유예 1회의 처벌 전력이 있었다고 판시했다. 김 대표 측은 해당 매체의 사실 확인 요청에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의 과거와 그가 선택한 배우들의 과거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그러니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다만 아이러니는 남는다. 타인의 과거가 함께 영화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지 않았던 제작자의 과거 역시, 그가 충무로 정상에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지는 않았다.

지금 그 정상에서 만든 ‘암살자(들)’은 거센 논란 한복판에 서 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다른 가능성을 극적으로 제시한 것을 두고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과 창작·표현의 영역이라는 시각이 맞선다. 제작진은 특정 역사적 결론을 확정하거나 기존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논란은 작품 밖으로까지 번졌다. 개봉 당시 이영애·김고은·이정재·장동건을 비롯한 배우·감독·작가 등 42명의 추천사는 현재 삭제된 상태다. 삭제 주체와 이유, 현재 논란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부산영상위원회도 예정됐던 대시민 무료 시사회를 취소했다. 위원회는 “최근 상황과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검토한 결정이라면서도 특정 입장에 대한 판단이나 지지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화려했던 이름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질문이 남았다. 김원국은 분명 영화를 잘 만드는 제작자다. 적어도 여러 번 잘 만들어냈다. ‘서울의 봄’이라는 성취를 지울 수도 없고, 어려운 시장에서도 계속 영화를 만들어온 그의 집요함과 흥행 감각을 폄훼할 생각도 없다. 오히려 그가 형편없는 제작자였다면 이 글을 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성공이 사람의 모든 것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좋은 영화를 만든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천만 관객을 모았다고 과거의 기록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영화판에서 영향력이 커질수록 자신이 내뱉는 한마디, 누군가에게 건네는 기회 하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무게 역시 함께 커진다.

‘하얼빈’을 앞두고 처음 마주했던 김 대표의 얼굴이 떠오른다. 흥행보다 영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안중근 의사를 향한 진심을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돈보다 영화의 의미를 말하던 제작자의 모습이었다.

그 눈물이 거짓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순적이니까.

뜨겁게 영화를 사랑하면서 누군가에게 무례할 수도 있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면서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을 한 문장으로 재단하는 일은 영화 한 편을 별점 하나로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그럼에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영화는 흥행하면 기록이 되지만, 사람이 흥행한다고 그의 기록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암살자(들)’을 둘러싼 소란 속에서 기자가 다시 김원국이라는 제작자를 들여다보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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