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아직 마음에서 덜 끝났어요. 다음 주에 셋이 만나기로 했는데, 그것까지 해야 마침표를 찍는 기분일 것 같아요.”
지난 10일 종영한 ENA 드라마 ‘아너 : 그녀들의 법정’(극본 박가연, 연출 박건호, 이하 ‘아너’)는 거대한 스캔들이 되어 돌아온 과거에 정면 돌파로 맞서는 세 여성 변호사의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만난 이청아(42)는 작품을 떠나보내는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며 “보통은 촬영 끝나고 방영까지 텀이 있는 편인데 ‘아너’는 촬영과 방영이 겹쳤다. 그래서 아직 끝난 느낌이 잘 안 든다”고 말했다.
이청아는 극 중 로펌 L&J의 변호사 황현진 역을 맡아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였다. 황현진은 완벽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 전 연인이자 하룻밤 불륜 상대였던 이준혁 기자의 사망 현장을 목격하고 도망치는 인물로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위기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인간적인 캐릭터다.
그는 “사실 여행 중 갑자기 대본을 받았다. ‘빨리 읽으라’는 회사의 연락에 암스테르담에서 쇼핑을 하러가다가 카페에 앉아서 대본을 읽었다. 6부까지 읽는데 3시간밖에 안 걸린 것 같다”고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를 회상했다.
이어 “감독님과 작가님이 저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하셔서 만났다. 제가 궁금증이 있으면 못참는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되는데요?’, ‘박제열(서현우 분)이 언제 한국에 들어왔는데 세 사람이 몰랐던 거예요?’ 등 궁금증을 물어보려고 감독님을 만났고, 이야기를 듣다고 홀려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합류 결정은 빨랐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상 시간이 아주 부족해서 마음 고생을 했단다.
“다른 분들은 출연이 일찍 결정됐는데, 제가 대본을 늦게 본 편이라 ‘준비도 못 하고 들어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컸어요. 저는 원래 준비 시간이 충분히 필요한 스타일이라 조바심이 많거든요. 다 준비해서 현장에 가야 직성이 풀리는데, 이번엔 가면서 준비해야 하니 혼자 마음이 참 급했죠.”
이청아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을 믿게 되었다며 “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캐릭터가 온전히 입혀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장에 나가서 감독님과 제작진이 그리는 그림 속에 들어가 봐야 비로소 완성된다. 초반부터 분량이 너무 많고 중요한 신들이 몰려 있어서 ‘큰일이다’ 싶었는데 막상 부딪쳐 보니 되더라. ‘아, 나를 믿어도 되겠구나. 어떻게든 되는구나’라는 확신을 얻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황현진이라는 캐릭터는 ‘도덕적 흠결’이 있는 캐릭터였다. 그는 “원작 속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면 국내 정서상 큰일 날 내용이더라”고 웃으며 “국내 시청자들은 주인공에게 대단한 결함이 있으면 불편해하지 않나. ‘도덕적으로 좋지 않은데 어떻게 이입하나’ 하고 방영 초반부터 공격당할까 봐 사실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는 황현진이 가진 ‘흠결’을 오히려 시청자들이 마음 쏟을 수 있는 부분으로 변신시켰다.
“배우 이청아라는 사람은 실수도 안 하고 싶어 하고 감정 드러내기도 어려워하지만, 현진이는 자기 잘못이 밝혀질까 봐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내가 책임져야지’ 하고 나서요. 그 모습이 저보다 훨씬 용감하게 느껴졌어요. 누군가가 나를 욕해도 현진이는 그 안에서 자기가 해낼 수 있는 스스로의 체면과 품위, 소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인물이에요. 이런 흠이 있지만 이걸 책임져 보겠다는 자세가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습니다.”
이런 이청아의 노력이 통했는지, 시청자들은 황현진을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보듬었다. 그는 “사람들은 강하고 멋진 사람은 동경하지만, 거리감을 가지는 것 같다. 전작들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빌런이나 재벌집 사모님처럼 거리감 있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현진이는 ‘아휴, 너는 왜 그러냐’ 하고 품어주고 싶은 연약함이 있지 않나. 그런 마음들이 현진이를 사랑해주게 만든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작 설정에서는 현진이가 전남친과 자면서 정보를 빼내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서 놀랐다. 한국 정서상 상당히 어려울 수 있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각색 과정에서 고민을 많이 해주셨더라. 전 남친에게 감정에 흔들려서 실수했다는 설정이 최선을 택한것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드라마는 ‘과연 성범죄와 신체적 범죄 중 어느 쪽이 더 중한 범죄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박제열은 윤라영을 유린한 성범죄자였고, 세 사람은 박제열을 정당방위의 범위를 넘어선 폭행으로 사지에 몰아넣으며 또 다른 범죄의 굴레에 갇혔다.
이청아는 이에 대해 “결국 20년 후에 그 상처를 드러내고 법의 심판을 받겠다는 선택이 중요했다”며 “라영이가 마지막에 딸인 민서가 죗값을 치르도록 돕지 않나. 그게 작가님이 생각하는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현진도 ‘나는 정당방위였고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건 현장에서 겁에 질려 도망친 순간 이미 잘못된 단추를 끼운 것”이라며 “친구를 보호하려는 선택들은 인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파트였다. ‘나는 안 그래’라고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론 ‘나도 저랬을지 몰라’라고 느끼게 하는 그 지점이 우리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힘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