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일이 가족사를 언급했다.
25일 오후 방송된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는 데뷔 50주년을 맞은 비주얼 싱어송라이터 윤수일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윤수일은 첫 번째 전성기에 관해 언급했다. 윤수일은 ‘아파트(A.P.T)’ 표기도 본인이 만들었다면서 “아파트먼트가 아파트 아니냐. 저는 단순한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심플하게 접근하자 싶었다. ‘쓸쓸한 너의 아파트’ 이렇게 정할 수도 있지만 각설하고 ‘APT’로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김주하는 “이 노래 들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게 과연 어느 아파트일까였다”며 추측했다. 조째즈는 “가사에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가 나오니까 한강 변이다”, 문세윤은 “‘쓸쓸한 너의 아파트’니까 미분양이다. 그 시대는 강남·잠실 쪽에 미분양 아파트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윤수일은 “잠실 쪽 맞다. 잠실대교쯤이었다. 80년대 초반이었다. 아파트가 드문드문 있었다. 그 자체가 약간 쓸쓸해 보이더라. 갈대가 바람에 춤을 추지 않냐. 별빛이 흐르는 다리에서 드문드문 있는 아파트를 보니 묘한 영감이 떠오르더라”고 밝혀 패널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아파트’는 발매될 당시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윤수일은 “사랑, 이별, 고독, 눈물, 외로움. 가요라는 게 대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하는데 아파트는 생뚱맞지 않냐. 방송국 전문가들도 제목부터 틀렸다고 했다. 들어보지도 않고서”라고 토로했다.
이어서 그는 “‘아파트’를 발표하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화면 보면 밴드와 같이 기타를 친다. 동선을 연습해서 스튜디오에 온다. 그런데 의도와는 상관없이 기타 칠 때 드럼을 잡거나 그러더라. 조용히 음악만 하고 가면 되는데 ‘이때는 이렇게 잡아 주시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윤수일은 “그때는 방송국이 경직됐었다. 가수는 정해진 곳에서 노래하면 됐었다. 그래서 모든 스케줄이 중단됐었다. 모든 매스컴에서. 가수를 포기하든지 다른 방도를 찾아야겠다 싶었다. 그 당시엔 음악감상실이라는 곳이 있었다. DJ들이 LP판 틀고 그랬다. 전국에 있는 모든 음악감상실을 방문했다. 음반을 차에 가득 싣고 직접 하나씩 드렸다”라고 말해 놀라움을 샀다.
그는 “일단 한번 틀어보라고 했다. DJ가 첫 곡으로 해 놓고 노래 처음에 초인종 소리가 들리니까 오프닝 멘트를 하기 좋은 거다”라며 국민대표 가요가 된 비화를 털어놨다.
‘딩동’ 소리는 계획된 소리가 아니었다고. 윤수일은 “노래를 다 만들어놓고 아파트를 상징할 아이템을 계속 생각했다. 그때 야X르트 아주머니가 벨을 누른 거다”라며 벨소리를 추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수일은 “지나가는 길에 야X르트 아주머니 계시면 팔아 드린다. 너무 감사해서”라고 덧붙였다.
방송 후반, 윤수일은 가족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어린 윤수일은 어떤 아이였냐는 질문에 “저에 대한 핸디캡에 대해서 굉장히 괴로워하면서 자랐다. 거울을 딱 보니까 한국 사람 맞나 싶더라”며 미군 공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라고 말했다.
김주하는 “태어나실 대 이미 아버지는 안 계셨다고 했는데 크면서 만난 적 없냐”고 물었다. 윤수일은 “전쟁에 참전했다가 어떤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본국으로 도망가지 않냐. 제가 그 아이 중 하나다. 얼굴을 본 적도 없다. 저한테는 어머니가 소중하니까”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당시 어머니 호적에 자식을 올릴 수 없었다고. 윤수일은 “대한민국 전쟁 후 태어난 혼혈인들은 다 입양시키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혼자서 저를 키우셨다. 입양 제의가 엄청 많았는데 어머니 고집으로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붓아버지로 인해서 제가 이름도 얻었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이름이 없었다. 친척도 없었고. 그래서 재가하시고 제가 윤 씨 성을 얻었다. 의붓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가 잘 모셨다. 어머니와 얼마나 사이가 좋으시면 일주일 기간 두고 같이 돌아가시더라. 제가 상주 완장을 한 달 동안 차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은 토요일 오후 9시 40분 방송된다.
[서예지 스타투데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