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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5억으로 만든 ‘실낙원’…“친한 사람끼리 동아리 활동하듯”

한현정
입력 : 
2026-10-12 17:01:04
‘얼굴’ 이어 또 저예산 도전…김현주·배현성 모자 호흡
모친이 쓴 이야기서 출발…“1년에 한 번은 이런 작업 하고파”
‘실낙원’ 스틸
‘실낙원’ 스틸

연상호 감독이 ‘얼굴’에 이어 또 한 번 저예산 영화에 도전했다. 약 5억원의 제작비로 완성한 심리 스릴러 ‘실낙원’이다.

12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실낙원’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연상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김현주, 배현성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류소영(김현주) 앞에 죽은 줄 알았던 아들 류선우(배현성)가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심리 스릴러다.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됐으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관객과 만났다.

지난해 저예산 영화 ‘얼굴’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연 감독은 이번에도 제작비 약 5억원 규모의 작품을 택했다.

연 감독은 “‘얼굴’도 그렇지만 ‘실낙원’ 역시 산업적인 목적을 갖고 만든 작품은 아니다. 친한 사람들끼리 동아리 활동을 하듯 만들었다”며 “늘 이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작업 자체가 즐거웠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이런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낙원’ 스틸
‘실낙원’ 스틸

‘실낙원’의 시작은 뜻밖에도 연 감독의 어머니였다. 평소 글쓰기를 어려워하던 어머니에게 “한글만 알면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독려했고, 이후 어머니가 연습장에 직접 써 내려간 이야기를 건넸다고 했다.

연 감독은 어머니가 쓴 세 편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에서 강하게 끌리는 지점을 발견했다. 악한 행동을 한 아들과 그런 아들을 끝내 품으려는 어머니의 복잡한 심리였다.

그는 “마지막 세 페이지에 아들과 그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심리, 마지막 선택이 담겨 있었는데 굉장히 기묘했다”며 “그 심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걸 탐구해 보자는 생각으로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원안은 여러 번 모습을 바꿨다. 첫 번째 각색본은 ‘펑크’라는 제목으로 완성됐고, 이후 소설 ‘블랙 인페르노’로 출간됐다. 세 번째 각색을 거쳐 최종적으로 영화 ‘실낙원’이 됐다.

연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그 심리를 100% 파악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고 했다”며 “인간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보였다. 그동안 해왔던 방식과 달라 개인적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다. 앞으로 제 영화 작법에도 변화를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얼굴’의 경험은 ‘실낙원’을 만드는 데 힘이 됐다. 그는 “‘얼굴’을 굉장히 개인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때 얻은 용기로 ‘실낙원’을 찍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좋은 동료들과 즐겁게 촬영한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영화에는 AI라는 동시대적 소재도 등장한다. 류소영은 ‘낙원의 아이들’이라는 AI 프로그램을 통해 10세 모습에 머물러 있는 가상의 아들과 교감한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질문하기 위한 장치다.

생성형 AI를 바라보는 연 감독의 생각도 밝혔다. 그는 “AI는 보편성의 집합이라는 느낌이 든다. AI 작업이 예술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은 결국 보편성이 독창성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미술사를 전공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마르셀 뒤샹의 ‘샘’을 예로 든 뒤 “생성형 AI 역시 충분히 독창성과 연결되는 예술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서 인간다움은 사색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사색으로 인해 많은 일이 벌어지고, 그것이 인간다움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아들을 잃은 뒤 9년을 살아온 류소영 역은 김현주가 맡았다. 김현주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류소영이라는 인물의 키워드를 머릿속에 넣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크게 딜레마에 빠지지는 않았다”며 “류소영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이 작품의 중심인 만큼 진정성을 갖고 연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짧은 촬영 기간도 높은 몰입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김현주는 “촬영 기간이 길었다면 즐겁게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수도 있다”며 “촬영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오히려 집중해서 몰입한 채 끝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배현성은 9년 전 실종됐다가 의문의 생존자로 돌아온 아들 류선우를 연기했다.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을 절제된 톤으로 표현하며 김현주와 팽팽한 모자 관계를 그린다.

‘얼굴’에서 부자 관계 속 감춰진 진실을 파고들었던 연상호 감독은 ‘실낙원’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을 통해 사랑과 본성의 경계를 들여다본다. 저예산이라는 자유로운 제작 방식 안에서 출발한 또 하나의 인간 심리 탐구다.

‘실낙원’은 오는 2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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