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차 같은 마음, 오답노트로 배워가고 있죠”
발레 소년이 훌쩍 자라 돌아왔다. 바로 배우 심현서(19)가 첫 장편 주연 ‘너와 나의 5분’으로 스크린의 문을 두드린다.
영화 ‘너와 나의 5분’은 모든 것이 낯설고도 새로웠던 2001년을 배경으로, 좋아하는 음악과 비밀을 공유하던 두 소년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엄하늘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개봉 전부터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오사카아시안필름페스티벌 JAIHO상,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를 휩쓸었다.
심현서는 2017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데뷔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탁월한 무용 실력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졸업작인 단편 ‘유월’을 통해 영화 연기를 시작했다. 드라마 ‘돼지의 왕’ ‘선산’을 비롯해 뮤지컬 ‘드림하이’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너와 나의 5분’에서는 일본 뮤지션 글로브를 좋아하는 경환 역을 맡았다. 내성적이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소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심현서는 “처음 찍은 장편이 성인이 되기 전에 개봉하게 돼서 정말 기쁘고,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다”며 설렘을 드러냈다.
퀴어 소재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그는 “대본 읽기 전에는 약간 걱정도 됐는데, 작품 안에서 경환과 재민, 경환과 어머니의 관계를 보며 ‘사람 이야기’로 느껴졌다. 퀴어라는 소재에 갇히기보다 경환이라는 인물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를 더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심현서는 대구 출신의 경환을 표현하기 위해 사투리 연습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는 “감독님이 직접 일주일에 세 번씩 사투리 수업을 해주셨다. 대구분이라 실제 억양이나 말투를 많이 배웠다. 경환이라는 인물에 어울리는 부드럽고 조용한 말투를 찾아가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영화의 배경인 2001년을 체감하기 위해 일본 음악과 당시 문화 자료도 찾아봤다.
그는 “경환이는 일본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 그 시대 느낌을 더 잘 알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당시 CD를 갖고 계셔서 도움이 됐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글로브의 ‘디파쳐스(DEPARTURES)’를 들었는데, 그 가사에 경환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또 경환이와 다르면서도 닮았다고 했다. 그는 “경환이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저는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 성향은 반대되는 점이 많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웠고 끌렸다. 그래도 한 가지를 좋아하면 깊게 빠지는 성향은 닮았다. 그런 면에서 경환이도, 저도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환이는 일본 음악과 애니 마니아라면, 저는 픽사 마니아다. ‘토이 스토리3’를 100번 넘게 봤다. 처음엔 인형들의 탈주가 재미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앤디의 감정이 더 와닿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경환의 상대역 재민은 배우 현우석이 맡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영화의 핵심축이다.
그는 현우석에 대해 “형은 너무 잘생기고, 처음엔 진짜 연예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외모뿐 아니라, 내면이 정말 단단한 사람이다. 촬영 전에 사투리 연습을 같이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덕분에 현장에서도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며 “형은 내향적이고, 저는 외향적인 편이다. 그런 점에서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반대여서 더 잘 만났다 싶다”고 말했다.
‘너와 나의 5분’은 사계절을 담은 영화지만, 촬영은 겨울에 진행됐다. 이에 그는 “우석 형이랑 제가 반팔 입어야 하는 신이 있었는데, 대사를 할 때 입김이 나오면 안 되니까 얼음을 물고 촬영했다. 추운 건 조금 힘들었는데, 형들이 같이 있어 힘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연으로서 첫 장편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모든 걸 잘 해내야 하고 분위기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장 분위기가 처지면 애교도 부렸다. 촬영 전에는 혼자 짊어져야 할 것만 같았는데, 형들 덕에 부담감도 잊어버리고 경환이에 집중할 수 있었다. 형들이 다 너무 잘 챙겨줘서 현장이 항상 즐거웠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현우석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길에서 혼자 우는 장면을 꼽았다.
그는 “대구 촬영 마지막 날이었다. 해가 지기 전 30분 안에 끝내야 했는데, 한 번에 감정을 끌어올려야 했다. 어떻게 몰입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그런데 스태프들도 같이 눈물 흘리며 너무 슬펐다고 하더라. 그때 ‘잘 해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기를 할 때 100% 만족은 못 한다. 하지만 그 장면만큼은 다시 해도 그만큼 못할 것 같다”며 웃었다.
빌리로 데뷔한 심현서는 잠시 발레리노를 꿈꾸기도 했다. 유명 기획사 여러곳에서 아이돌 제의도 받았지만, ‘유월’을 통해 연기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유월’이라는 단편을 찍고 나서 ‘배우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연기는 정답이 없어서 재미있다. 그 인물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어떤 작품이든 연기할 때는 그 캐릭터로 늘 진심을 다해 연기하려고 한다. 그리고 결과물을 본 뒤에 오답 노트를 만들면서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열정을 드러냈다.
아이돌을 해보고 싶지는 않았을까. 그는 “저도 아이돌을 좋아하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춤추고 노래하는 것도 여전히 좋아한다. 하지만 연기에 더 끌렸다”고 힘주어 말했다.
20대를 앞둔 심현서는 앞으로 다양한 캐릭터와 작품을 만나고 싶다며 “기회가 오면 뭐든 다 해보고 싶다. 아직은 9일 차 신인 같은 마음이다. 그러니 더 열심히 해야한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이 배우 나오면 믿고 본다’고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미소 지었다.
[양소영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