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연상호 샤라웃? 감지덕지하죠”
윤가은 감독의 신작 ‘세계의 주인’이 세상을 향해 씩씩한 발걸음을 시작했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인싸와 관종 사이 속을 알 수 없는 열여덟 여고생 주인이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운동을 홀로 거부한 뒤 의문의 쪽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우리들’ ‘우리집’으로 호평 받은 윤가은 감독의 6년 만의 신작이다.
한국 영화 최초로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인 플랫폼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제9회 핑야오국제영화제의 국제신인경쟁 부문에 해당하는 크라우칭 타이거스 부문, 제69회 BFI런던영화제 경쟁 부문, 제41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등에 연이어 초청받았다.
윤가은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오랜만의 영화라 긴장되고 감사함도 있었다. 해외에서 먼저 공개됐지만,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기대되고 무서웠다. 지금도 이 영화를 어떻게 봐줄지, 저희가 영화적 재미와 감동을 드릴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긴 고민이 있었지만, ‘세계의 주인’은 계속 윤 감독의 마음을 맴돌다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윤 감독은 “성과 사랑을 경험하는 십대 청소년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마음 속에 가져왔다. 단편 시나리오도 썼고 십 년 이상 됐다. 저는 개연성이나 리얼리티에 천착하는 감독이라 어떻게 하면 사실적인 경험들, 진짜인 순간들을 발견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보면 나도 굉장히 불편하고 어려운 요소들이 이야기에 침입하게 되더라. 그걸 밀어내는 기간이 길었다. 어디로 끌고 갈지 갈피를 못 잡겠더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가 왔고 셧다운이 되면서 앞으로 내게 영화를 만들 기회가 올까, 영화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이야기가 세상에 나와야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 이게 내 마지막 영화일 수 있다는 고민 속에서 시작하게 됐다. 그동안 다른 작품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뭔가 제 안에 못다 한 숙제처럼 마음에 걸리더라. 어떤 톤앤 매너로 끌고 갈지 고민할 때 이금이 작가의 ‘유진과 유진’을 다시 읽게 됐는데 제게 굉장한 환기가 됐고 가이드라인 처럼 느껴졌고 강력한 등불이 되어줬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이지선 이화여대 교수님의 인터뷰도 강력한 힘이 되어줬다. 젊었을 때 화상을 입고 회복하면서 지금까지 오신 분인인데, 본인에게 닥친 사건이 여전히 상흔으로 남아있지만 ‘여러분 삶에 희로애락이 있듯이, 내게도 희로애락이 있다’는 말이 제게 핵심처럼 느껴졌다. 그 말을 시나리오 쓸 때 옆에 붙여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윤 감독은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이번엔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그는 “기존에 해온 방식에 대한 매너리즘이 있었다. 되게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내가 영화를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는 1인칭 시점을 좋아하고 해왔는데, 이 작품을 들여다볼수록 1인칭이 맞나 싶더라. 뉴스를 볼 때 이게 한 개인에게 일어난 대참사 같은 느낌이더라. 보통은 개인이 온전히 짊어지지만, 개인을 둘러싼 세계를 조명하고 세계가 개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담는 게 중요한 것 같았다”고 밝혔다.
또 자료 조사를 열심히 했다며 “관련 자료는 넘쳐났다. 너무나 많은 친구들이 성 고민을 온라인상에도 많이 올려주고 있다. 실제로 교사, 10대 청소년들을 통해 대면 조사를 하면 할수록 제가 옛날 사람이 된 걸 느꼈다. 문화가 바뀐 건지 예전보다 연애나 성 경험 시기가 빨라졌더라. 그거에 비해 어른들이 그 문화에 대해 깊숙이 알면서도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통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부터, 모든 걸 다 경험한 친구까지 범위가 너무 넓어서 평균치를 낼 수가 없겠더라. 도와주고 대비하는 역할을 어른들이 해야 하는데 어른들도 모르는구나 싶었고, 저도 새롭게 알게된 측면이 많아 우리에게 남은 숙제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세계의 주인’을 생생하게 그려낸 배우 서수빈은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윤 감독은 배우 프로필을 처음 봤을 땐 인상 깊게 느끼지 못했지만, 서수빈의 눈빛을 보고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겨 오디션을 봤다고 했다.
윤 감독은 “서수빈의 눈에서 느껴지는 총기, 생기가 있어 만나보고 싶었다. 제 예상보다 키도 크고 예의와 절도가 있는 게 매력 있더라.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주 많은 다양한 경험이 있고 그걸 귀하게 여기고 있더라. 운동을 한 것 같아 물어보니 태권도를 10년 정도 했다고 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했다고 하더라. 처음부터 운동하는 설정이 있었기에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오디션 때 즉흥극 할 때도 굉장히 유연하더라. 오디션장 가는 길에 제 앞에서 서수빈이 종이를 손에 쥐고 이어폰을 끼고 흰 티를 입고 가는데 영락없는 고등학생의 그것 같았다. 호기심 많고 주변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씩씩하게 가는 모습을 봤다.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는데, 그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았다”고 미소 지었다.
신예 서수빈과 함께 베테랑 배우들이 ‘세계의 주인’을 함께 만들어줬다. 윤 감독은 “꼭 신인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는데 뽑고 보니 그랬다. 이 세계가 관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길 원했다. 그래서 배우들을 둘러싼 어른들은 우리가 봐왔던, 어떤 의미로는 친숙한 사람들이 세계를 구성해 준다면 친밀한 세계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민시는 절 같이 하고 싶은 감독으로 언급하고 싶기도 했더라. 그래서 좋은 기회가 닿아서 프러포즈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우리들’ ‘우리집’을 함께한 장혜진, 과거 인연이 있던 김석훈도 등불이 되어줬다.
윤 감독은 “장혜진 선배님이 대본을 읽고 전화가 와서 잘 읽었고 다른 사람에게 줬으면 삐쳤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모르지만 네가 이야기한 주제나 방향에 공감하고 있다. 세상에 나와야 할 이야기가 우리를 거쳐서 나오는 거니까 헛된 생각이 들어올 것 같으면 버리라고 하더라. 영화제에 가고 싶다거나 이것으로 입신양명을 누리려고 한다면 하지 말라는 거다. 그런 부수적인 것들을 일체 버리고 겸손하게 해야할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고, 그런 헛된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김석훈 선배는 제가 20년 전에 대학로에서 연극 조연출을 했는데, 그때 처음 만났는데 재밌고 좋은 분이었다. 제가 영화를 하게 되자 잘한다고 응원해 줬다. 아빠 역을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길 바라서 부탁했다. 그 역할 제안 받았을 때 이걸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며 피드백을 주셨다. 선배는 두 아이 아버지기도 하고 사회에 고민이 많은 분인데, 선배의 피드백을 들으면서 전형적인 그림에서더 사실적이고 살아있는 인물이 나온 것 같다. 그래서 감사하게 같이 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얼굴’의 연상호 감독, 배우 박정민을 ‘세계의 주인’을 향한 따뜻한 지지를 보내줬다. 연상호 감독은 ‘세계의 주인’를 두고 “보법이 다른 윤가은 감독님의 걸작”이라고 호평했다. 박정민 역시 “엄청난 것이 나와버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
이에 윤 감독은 “말도 안 되는 샤라웃으로 감지덕지하다”며 “제가 독립영화만 세 편째인데, 독립영화인에게 흥행은 마치 ‘세계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과 같다. 박정민이나 연상호 감독이 이 작품에 지지 발언을 해준 건 저나 영화 자체에 대한 칭찬보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주인이들을 향한 손 내밂이라고 생각해 온기가 느껴진다. 그런 차원에서 이 영화를 많이 봐줬으면 하는 꿈을 꿔본다. 더 많은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는 문이 됐으면 좋겠다”며 ‘세계의 주인’을 향한 따뜻한 온기를 바랐다.
[양소영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