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평점 6점, 호불호? 모든 리뷰 소중”

배우 염혜란(48)이 ‘어쩔수가없다’의 관능적인 아라로 또 한 번 존재감을 펼쳤다.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됐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배우 이병헌 손예진 이성민 염혜란 박희순 등이 호흡을 맞춰 화제를 모았다.
염혜란은 만수가 살해하려는 실직자 구범모의 아내이자 배우 지망생 아라 역을 맡아 활약했다.
염혜란은 ‘어쩔수가없다’ 합류 과정을 묻자 “처음 아라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의 배우들이 있지 않나. 앉아 있을 때 관능적인 느낌이 나야 하는데, 저는 그런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박찬욱 감독님에게 제안받을 때가 감독협회 시상식에서 ‘마스크 걸’로 상 받을 때였는데, 그 작품과 아라의 갭이 크니까 혹시 안 보신 것 같아 물어봤다. 그런데 감독님이 봤다고, 예상이 되는 배우가 하는 것보다 제가 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 오히려 캐릭터 간 괴리를 고민해야 할 주체는 함께하는 모든 스태프와 연출하는 자신의 몫이란 이야기를 해주셔서 믿음을 가지고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찬욱 감독님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떨리고 좋으면서도 두렵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중이 과연 날 아라로 받아들일까 싶어 걱정됐다. ‘마스크걸’ 경자나 ‘폭싹 속았수다’ 광례까지, 대중이 제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저의 아라를 수용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고백했다.
염혜란은 아라가 처음엔 자신과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접점을 찾게 됐다고 했다.
그는 “저는 연기할 때 저로부터 시작해서 그 캐릭터로 도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떨 때는 저와 가까운 길도 있고, 먼 길도 있다. 그 과정에서 도달하지 못할 때도 있고, 도달할 때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작업이 소중한 게 처음에는 아라와 비슷한 지점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계속 오디션에 떨어진 건 비슷하다. 저도 오디션을 정말 못 보는 스타일이라 제 전작을 보고 캐스팅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 외에는 다른 접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접점이 많더라. 계속 배우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나, 지금 이 일을 오래하고 있지만 안되면 다른 거라도 해봐야지 싶은 현실적인 면모가 닮았더라”고 설명했다.

특히 염혜란은 박찬욱 감독과 작업하면서 또 한 번 배움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의 ‘헤어질 결심’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거 외에는 강심장으로 봐야 하지 않나. 저는 평소에 가짜 피인 걸 알면서도 잔인한 걸 잘 못 본다. 그런데 이번에 작품을 준비하면서 감독님이 쓴 책, 사진집, 영화도 다시 보고 공부했다. 감독님의 작품 속 상징과 의미를 은유로 봐야 하는데, 그동안은 너무 리얼리즘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전보다는 좀 더 감독님 작품을 재밌게 볼 수 있게 됐던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스크걸’에서 만난 류성희 감독님이 현장에 자주 놀러 오라고 하더라. 제가 방해될 것 같다고 하니까 현장에 자주 와서 대화하면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고, 미리 양해를 구하고 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거기에 용기를 얻어 자주 현장에 갔었다. 그러니까 제가 혼자서 시나리오로 읽은 버전, 콘티가 나온 것, 현장 버전을 다 보게 되지 않나. 시나리오가 결과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전부 지켜볼 수 있다는 경험들이 너무 소중했다. 그 과정에 함께하는 게 소중했고, 그 전에는 늘 결과물만 봐왔는데 과정을 접하니까 감독님이 더 대단하다고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이번에 ‘올드보이’ 때 호흡을 맞춘 스태프들이 많이 함께했다. 그분들의 협업을 지켜보는 것이 경이로웠다. 감독님은 1인 체제로, 모든 걸 주관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너무 말씀을 잘 듣고 열려 있으신 분이더라”며 존경심을 표했다.
염혜란은 부부 호흡을 맞춘 이성민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 선배의 공연을 본 뒤 제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분과 부부로 역할을 한다니 감회가 남달랐다. ‘소년 심판’ 때는 한 장면 밖에 안 마주쳐서 안타까웠는데, 이번엔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서로 연기에 대해 한마디도 안 했는데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잘 맞았다. 별 이야기가 없어도 자동으로 맞춰지는 호흡이 있어 너무 좋았다. 연기뿐만 아니라 제가 긴장하고 그럴 때마다 성민 선배에게 가서 떨었다고 하면 선배는 잠을 못 잤다고 하더라. 이렇게 연기를 오래하고 잘하는 분도 떨리는데, 내가 떨리는 것도 당연하구나 싶어서 위안을 얻었”고 말했다.
또 염혜란은 “선배님이 전화하는 연기를 보러 촬영장에 간 적이 있는데, 연기자들은 전화 신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둘이 호흡하면 액션과 리액션이 되는데, 전화는 오로지 혼자 하는 거라 오히려 어렵다. 그런데 혼자서 풍부하게 표현하는 걸 보고 대단한 분이라고 느꼈다”고 감탄했다.
그러면서 “이병헌 선배도 코미디 호흡을 정말 잘 썼다. 뱀에 물리는 신도 너무 재미있게 살리더라. 정말 이병헌 이성민 선배는 제 배드민턴공이 떨어질 것 같으면 확 올려주고 다 살려주더라. 저의 모든 신을 마무리해 주고 살려주더라”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베테랑들이 만난 ‘어쩔수가없다’지만, 개봉 후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관객 평점이 6점대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염혜란은 “이병헌 선배님이 관심이 지나치면 두렵다고 했는데, 기대치가 높아서 생각보다 별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저는 ‘어쩔수가없다’를 5번 봤는데, 처음에 봤을 때는 감독님이 주제가 명확한, 쉬운 영화를 만들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두 번째 보니까 또 달랐다. 처음엔 굵은 선이 하나 있는 느낌이었는데, 여러 번 보니까 다르더라. 박찬욱 감독은 워낙 디테일하고 의미를 둔 작품이라는 선입견이 있으니까 편하게 못 보는 지점도 있어서 호불호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객들이 어떻게 봤는지 우리에게 지표가 되니까 그런 반응도 귀하다. 소중한 리뷰다. 다만 그냥 ‘재미 없다’고 하지 말고, 어떤 부분이 어려웠는지 길게 적어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그런 평이 더해진다고 완성된 영화를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작품에서 더 발전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염혜란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부터 ‘어쩔수가없다’까지, 매번 캐릭터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며 ‘천의 얼굴을 보여줬다.
이에 그는 “저는 연기를 하면서 뭔가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을 두려워 한다. ‘폭싹 속았수다’ 광례를 연기해서 너무 행복했지만 어디를 가도 저를 보면 어머니 보듯이 보시고, 또 저를 보고 우는 분도 계셨다. 너무 좋고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와 다른 아라 캐릭터를 보여드려야 하니까 큰일이라는 생각도 했다. 저는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이 두렵다. 이것 저것 다 해보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 싶다”며 여전히 새로운 캐릭터와 변신을 향한 뜨거운 열망을 드러냈다.
[양소영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