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개런티 출연이요? 잘 보이고 싶어서요. 하하”
배우 박정민이 다시 한 번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고 있다. 신작 영화 ‘얼굴’(감독 연상호)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동시에 연기하는 ‘1인 2역’에 도전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것.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초청된 ‘얼굴’은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 임영규의 아들 동환이,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의 백골을 발견하며 진실을 파헤쳐가는 이야기다.
원작은 연상호 감독의 동명 그래픽 노블. 권해효가 노년의 장인 임영규를, 신현빈이 얼굴조차 보여주지 못한 어머니 정영희를 연기했다.
그는 “처음에는 아버지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1인 2역’이 효율 적일 것 같았다. 감독 님도 고려하고 계셨다더라”라며 “젊은 아버지를 아들이 연기하면 영화적으로도 흥미롭겠다고 생각했다. 준비 기간이 고작 2주였지만, 캐릭터를 억지로 만들기보다는 분위기와 느낌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연기의 밑바탕에는 개인적인 경험도 스며 있다. 그는 “실제로 아버지가 사고로 시력을 잃으셨다. 아들 연기를 할 땐 평소 팔꿈치를 내어드리던 순간들이 자연스레 묻어났다”면서 “아버지 역할을 준비하면서는 보여드리고 싶어도 보실 수 없다는 점이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고 고백했다.
“늘 그렇지만 선택하는 과정에서는 (아버지를 떠올린다거나) 별다른 생각이 없었어요. 오히려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됐죠.”

제작비는 2억 원. 초저예산 영화지만 작품의 퀄리티는 결코 작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정성과 열정이 집대성된 가운데 박정민은 노개런티 출연을 선택했다.
그는 “출연료를 받기보다는 회식비로 쓰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왕 돕는 거 화끈하게 돕고 싶었다. 제대로 잘 보이려고 했다”며 “흥행하면 함께 나누자는 마음으로 러닝 개런티만 약속했다”고 웃었다.
촬영 현장은 그에게 초창기 독립영화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파수꾼’에서 함께한 스태프들이 있었다. 스무 명 남짓한 인원과 함께 뛰며 촬영했던 현장이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현재 ‘안식년’ 중이다. 배우로서의 활동을 잠시 멈추고 독립 출판사 ‘무제’를 세워 대표로서 발로 뛰고 있다.
“너무 많이 촬영장에만 가는 거 같아서 그게 박정민이라는 개인에게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계속 너무 화려한 스케줄에 치이다 보면 사람이 매일 열심히 할 수 없다”고 휴식을 선언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는 “작가님들의 결과물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뒷방에만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며 “출판사의 브랜딩과 홍보를 직접 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많이 얻었다”고 설명했다.
출판사 대표로서 경험은 배우 박정민에게 또 다른 배움을 안겼다. “배우로 일할 땐 늘 누군가의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대표가 되고 나니 반대로 직원들이 상처받지 않게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됐다. 그동안 나를 서포트해주던 분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출판사의 첫해 성적표는 흑자였다. 그는 “엄청난 수익은 아니지만, 직원 한 명을 더 뽑고 책에 더 투자할 정도는 벌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작품 속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두 얼굴을 오가듯, 현실에서는 배우와 대표를 넘나들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호칭은 달라질지라도 박정민을 관통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잘 보이고 싶고, 잘해내고 싶다는 진심. 영화 ‘얼굴’은 그 진심이 어디를 향하는지 또렷하게 보여준다.
“편법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제대로 하네’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거든요. 전시를 하거나 오디오북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시장 규모가 작아 큰 수익을 내진 않아요. 다만 책이 가진 진정성에 힘을 모아주고 싶죠. 우리 영화도 그런 마음이 모여 완성되 작품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도 오롯이 행복했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