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배우 김지원이 최고 시청률 24.9%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눈물의 여왕’ 이후 2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다. 이번에는 어떤 수술도 실패하지 않는 천재 외과의사다. 김지원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지만, 그가 선택한 ‘닥터X’의 흥행에도 같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는 9일 첫 방송되는 SBS 새 금토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는 천재적인 수술 실력을 지닌 외과의사 계수정(김지원 분)이 의료계의 부조리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메디컬 누아르다.
원작은 일본 TV아사히에서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총 7개 시즌에 걸쳐 방송된 ‘닥터X : 외과의 다이몬 미치코’다. 오랜 기간 높은 인기를 누리며 일본을 대표하는 의학드라마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2024년에는 극장판까지 제작됐다.
원작의 성공을 이끈 것은 주인공 다이몬 미치코(요네쿠라 료코 분)의 독보적인 캐릭터였다. 다이몬 미치코는 특정 병원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외과의사로, 조직의 권위와 관행에 굴하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인물이다. 부조리한 요구를 거부하는 거침없는 태도와 수술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은 시청자들에게 통쾌한 대리만족을 안겼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이 한국판에서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개된 예고편에서 계수정은 의사 면허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교수의 연구 보조와 논문 자료 조사, 원장과 교수의 회진은 물론 회식과 친목 모임까지 거부한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추가 근무와 수술 건당 특별수당을 받는다는 고용 조건도 내건다. 원작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한국 시청자들에게도 같은 통쾌함을 줄 수 있느냐다. 논문 자료 조사나 업무 외 회식을 거부하는 것은 불필요한 조직 문화에 맞서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면 원장이나 교수의 회진을 거부하는 모습은 다르게 읽힐 여지가 있다.
예고편 속 회진은 과거 드라마 ‘하얀 거탑’처럼 고위 의료진을 중심으로 여러 의사가 병동을 도는 집단 회진으로, 병원 조직의 위계질서를 상징하는 장치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이 한국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익숙하거나 부조리한 관행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계수정의 거부 역시 통쾌한 저항보다 공감하기 어려운 반항으로 비칠 수 있다.
물론 드라마가 반드시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설정도 작품 안에서는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다. 오히려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난 인물과 사건이 드라마 특유의 재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원작의 상징적인 설정을 재현하는 것과 그 설정이 지닌 재미까지 옮겨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제작진 역시 이러한 차이를 인지하고 있다.
이정림 감독은 지난 7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한국판으로 각색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워낙 배경과 시스템이 다르다”며 “원작이 가지고 있는 뼈대와 설정은 존중해서 가져오되 한국적인 정서를 살리기 위해 재해석한 부분들이 있다”고 밝혔다.
주인공 계수정의 캐릭터 역시 한국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변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수정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비롯해 캐릭터의 여러 부분도 한국 정서에 맞게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각색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원작 팬덤의 우려도 인지하고 있었다. 이 감독은 “원작이 시즌7까지 나오고 극장판까지 제작될 정도로 팬층이 두텁다. 우려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최대한 원작의 장점은 가져오면서 한국 시청자들이 정서적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신경 썼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원작의 뼈대와 설정을 유지하면서 한국적인 정서를 입히는 작업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한국판 역시 ‘프리랜서’ 외과의사라는 원작의 핵심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다. 병원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권위에 맞서는 주인공의 독립성은 유지하되, 그 행동에 한국 시청자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특히 원작의 통쾌함은 주인공이 조직의 요구를 거부한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계수정이 무엇에 맞서고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갈등을 겪는지가 충분히 그려져야 한다. 원작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가져온 만큼, 이를 한국적인 이야기로 풀어내야 하는 제작진의 과제도 분명해진 셈이다.
더욱이 국내 시청자들에게 천재 의사를 내세운 드라마는 낯설지 않다. SBS는 이미 한석규 주연의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뒀다. 2016년 첫선을 보인 시즌1은 최고 시청률 27.6%를 기록했고, 시즌2와 시즌3 역시 각각 27.1%, 16.8%를 기록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낭만닥터 김사부’ 역시 압도적인 수술 실력을 갖춘 천재 의사가 병원 조직의 권력과 관행에 맞서는 이야기다. 그러나 통쾌함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달랐다. 김사부가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신념과 그 과정에서 겪는 갈등을 통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면, ‘닥터X’ 원작은 조직의 요구를 거부하는 독립적인 외과의사가 자신의 실력으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서 재미를 찾았다.
두 작품 모두 권위에 맞서는 천재 의사를 내세우지만, 시청자들이 그 저항에 공감하는 이유까지 같지는 않다. 한국판 ‘닥터X’가 원작의 통쾌함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수정만의 신념과 이야기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여기에 한국판이 내세운 ‘메디컬 누아르’라는 장르적 변주도 관건이다. 원작의 통쾌한 캐릭터극에 의료계의 부패와 권력 다툼을 더해 한국적인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국내 의학드라마에서도 병원 내 권력 다툼과 부조리는 꾸준히 다뤄졌던 소재인 만큼 익숙한 갈등을 넘어서는 차별화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닥터X’를 향한 기대감은 상당하다. 무엇보다 2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오는 김지원의 존재감이 크다.
김지원은 지난 2024년 방송된 tvN ‘눈물의 여왕’에서 홍해인 역을 맡아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다. ‘눈물의 여왕’은 최고 시청률 24.9%를 기록하며 tvN 역대 드라마 시청률 1위에 올랐다. 김지원 역시 특유의 섬세한 감정 연기와 캐릭터 소화력을 인정받으며 흥행을 이끌었다.
그간 ‘태양의 후예’, ‘쌈, 마이웨이’, ‘나의 해방일지’, ‘눈물의 여왕’ 등 다양한 작품에서 서로 다른 매력의 인물을 그려온 만큼,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지도 관심사다.
특히 ‘닥터X’는 김지원의 첫 본격 의학드라마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전작에서 보여준 도도하고 냉철한 재벌 3세의 모습과 달리, 이번에는 거침없는 언행과 압도적인 수술 실력을 갖춘 천재 외과의사 계수정으로 변신한다.
김지원의 강점인 캐릭터 소화력이 빛을 발한다면 한국 시청자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는 계수정이라는 인물 역시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갈 가능성이 있다. 원작의 다이몬 미치코를 연기한 요네쿠라 료코가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캐릭터를 완성했던 것처럼, 김지원만의 색깔로 새로운 ‘닥터X’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기대다.
다만 높아진 기대치는 그만큼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작의 흥행 성적뿐 아니라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원작 캐릭터와의 비교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배우의 호연만으로 원작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제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닥터X’의 성패는 원작의 성공 공식을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하느냐가 아니라, 그 공식을 한국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로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본에서 탄생한 다이몬 미치코의 독보적인 매력을 살리면서도 김지원만의 새로운 계수정을 완성해야 하는 셈이다.
“나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어떤 수술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계수정의 자신감이 흥행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김지원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쥔 ‘닥터X’가 한국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