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바냐 삼촌’ 아닌 이서진 삼촌, 웃기고 울리고 다 하네
※ 이 기사에는 ‘바냐 삼촌’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바냐 삼촌’이 아니라 이서진 삼촌 그 자체였다.
배우 이서진이 연극 ‘바냐 삼촌’을 통해 데뷔 27년만에 연극 무대에 섰다.
‘바냐 삼촌’은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4대 희극 중 하나로, 평생을 삶의 터전과 가족, 그 안의 질서에 헌신해 온 ‘바냐’와 ‘소냐’를 비롯해, 어느 순간 일상의 균열 속에서 삶 전체가 흔들리는 평범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바냐(이서진 분)는 조카인 소냐(고아성 분)와 함께 죽은 누이의 남편이자 대학 교수 세레브랴코프(김수현 분)을 뒷바라지 하며 시골 영지에서 평생을 살아온다. 그러나 대단한 줄 알았던 세레브랴코프가 대단치 않은 인물이었다는 걸 그의 퇴임식에서 깨닫고, 젊은 아내 엘레나(이화정 분)와 함께 시골 영지에 내려온 세레브랴코프에게 울화와 분노를 느낀다.
소냐는 바냐의 친구이자 의사인 아스트로프(양종욱 분)를 남몰래 짝사랑한다. 바냐 역시 엘레나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아스트로프는 엘레나와 은밀한 관계로 거듭난다.
모두가 파국을 향해 나가가던 중 세레브랴코프는 영지를 팔자고 제안하고, 결국 폭발한 바냐는 세레브랴코프에게 총을 겨눈다. 살인미수로 끝난 사고 후, 세레브랴코프와 엘레나는 영지를 떠나고, 바냐와 소냐는 그 자리에 남아 “우리는 계쏙 살아가야 해요. 그리고 언젠가 쉬게 될 거예요”라며 다시 힘겨운 삶을 살아낸다.
극은 전체적으로 밝고 소소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150분의 러닝타임에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건 대부분 바냐 역의 이서진이다.
특히 이서진은 기존 연극에서의 정극 대사톤 대신, 평소 이서진의 말투를 그대로 사용해 작품을 소화해내며 캐릭터와 관객들과의 거리감을 줄였다.
불평 불만으로 가득찬 바냐는 많은 이들이 예능에서 본 투덜이 이서진의 모습과 겹쳐진다. 술에 취해 엘레나에게 치근대는 모습부터, “기댈 곳이 없다”는 엘레나를 벽에 기대게 하는 장면 등은 예능인 이서진을 떠올리게 해 폭소를 자아낸다.
예능인 이서진 삼촌만 존재했던 건 아니다. “난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다 날렸어!”라고 절규할 때는 함께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27년 동안 드라마, 영화를 촬영하며 쌓아온 필모그래피의 힘이다.
앞서 이서진은 “바냐를 맡기 전부터 갱년기를 앓고 있어서 바냐를 이해하는 게 어렵진 않다. 바냐의 상황은 나의 상황보다 훨씬 안좋지만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이 극을 소화하는데 많이 도움이 되고 있다. 아주 생소한 인물을 연기한다는 생각보다는 현대의 나를 내가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전 회차(22회) 원 캐스트로 진행된다. 이서진은 한 달 가까운 공연 기간 동안 매 회차 무대를 책임진다.
‘바냐 삼촌’이 이서진의 은퇴작이 되지 않길 많은 이들이 바랄 듯 싶다. “너무 힘들다. 마지막 작품이길 기대한다”고 은퇴 예고를 한 이서진을 앞으로도 무대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러닝타임 145분(인터미션 15분 포함). 12세 이상 관람가. 5월 31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