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여전히 화려했지만, 전작의 영광 위에 핀 꽃치고는 그 향기가 지나치게 옅다. 배우들의 연기만 압도적인, 안타깝게도 이를 제외한 모든 요소는 퇴보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다.
20년 만에 돌아온 런웨이는 전설적인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와 기획 에디터로 돌아온 앤디(앤 해서웨이)의 재회로 문을 연다. 럭셔리 브랜드 임원이 된 에밀리(에밀리 블런트)까지 합류해 급변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설정 자체는 흥미롭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해버린 미디어 환경, 더 이상 절대 권력이 통하지 않는 조직 문화, 레거시 브랜드의 생존 문제까지 지금 시대와 맞닿아 있는 재료도 많다. 배우들은 등장과 동시에 관객을 다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눈빛과 걸음, 제스처 하나만으로도 공기를 바꾼다.
메릴 스트립은 여전한 카리스마 속에 시대에 밀려나는 거장의 쓸쓸함까지 입체적으로 담아낸다. 앤 해서웨이는 더 단단해진 소신으로 제2의 성장기를 맞는 앤디를 한층 더 뜨겁게 표현해낸다. 에밀리 블런트는 지적 매력이 증발한 채 허영만 남은 시대착오적 캐릭터를 특유의 사랑스러운 연기로 간신히 구제해낸다.
아쉬운 건 오롯이 그것만이 빛난다는 점이다. 영화는 각종 흥미로운 소재들을 끝내 제대로 요리하지 못한 채 겉핥기만 반복한다. 할리우드 특유의 ‘속 빈 강정’의 전형이자 실패한 스토리텔링이다.
1편이 사랑받았던 이유는 단순히 명품 옷과 뉴욕의 화려함 때문이 아니었다. 야망과 노동, 인정 욕구와 자존감, 그리고 서로를 닮아가며 변해가는 인간관계의 미묘한 균열이 있었다. 미란다는 언뜻 악마였지만 알고 보면 외로운 사람이었고, 앤디는 흔들리면서도 성장했기에 그 선택은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반면 2편은 굵직한 뼈대를 잇는 촘촘함과 섬세함이 부족하다. 앤디가 특종을 잡아내는 과정은 지나치게 압축돼 있고 손쉽다. 위기의 순간들 역시 일차원적이며, 갈등을 위한 어설픈 사건의 나열처럼 보인다. 회사 매각 위기부터 세대교체까지 수많은 키워드가 등장하지만 정작 어느 하나 깊게 파고들지 못해 화려한 포장지만 덩그러니 남는다.
관계의 힘도 빈약하다. 미란다와 앤디는 깊어진 공조를 보여주지만 그 과정이 충분히 설득되지 않는다. 오롯이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그나마 끌고 가지만, 그 연기력이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의 완성도다.
앤디가 외치는 ‘진짜 저널리즘’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자칫 캐릭터의 매력까지 반감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살려내는 건 오롯이 앤 해서웨이의 공이다. 그는 섬세한 표현력과 전작에서 쌓아온 캐릭터의 호감도를 방패 삼아, 헐거운 서사의 틈을 성숙한 아우라로 메운다.
특히 에밀리는 이번 작품에서 가장 낡은 방식으로 소비된다. 날 선 독설을 내뱉으면서도 프로페셔널한 야망을 보여줬던 그는, 이번 속편에서 지적 매력이 전무한 ‘골 빈 상류층’ 클리셰로 전락했다. 남자의 재력에 집착하고 우정마저 손쉽게 배신하는 그의 모습은 2026년의 관객이 기대한 ‘성공한 여성’의 어떤 범주에도 들지 못한다.
새롭게 등장한 아시아인 캐릭터 또한 전형적인 ‘너드형 동양인’ 이미지에 머문다. 다양성을 말하지만 시선은 2000년대 할리우드에 가깝다. 매력적인 배우들을 데려다 놓고 90년대식 평면적 프레임에 가둬버린 연출의 명백한 패착이다.
냉정하게 말해 이번 속편의 가장 큰 미덕은 ‘향수’다. 이야기에 설득당하진 못해도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는 힘만큼은 유효하다. 그러나 배우들의 단단해진 연기 공력에 비하면 이를 담아낸 그릇은 지나치게 얕고 투명하다. 과거의 영광에 먹칠까진 아니더라도, 그 영광을 더 밝게 비추지 못한 채 ‘아쉬운 재회’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