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도, 그룹 블랙핑크의 로제도, 역부족이었다. K팝 최고 가수들이 연달아 문을 두드렸으나 그래미 어워즈는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1일 (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로제의 ‘아파트’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등 무려 3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으나 최종 수상자로는 호명되지 않았다.
시작은 호기로웠다.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본 행사 오프닝 무대를 꾸민 로제는 기습 볼뽀보, 허리 꺾기 등 자극적이면서도 열정적인 퍼포먼스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사전 행사에서 펼쳐진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수상 불발을 겪은 뒤라 아쉬움을 안고 있었을 테지만, 본상이 남아있는 만큼 그의 눈빛은 여느 때보다 살아 넘쳤다.
그러나 수상에서만큼은, 그래미는 빈틈없는 ‘보수의 끝판왕’이었다. 세계 주요 음악 시상식 중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는 그래미는 대중성을 곁들인 흥행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음악 자체에 집중한다.
실제로 ‘아파트’는 국내외 큰 인기를 끈 건 맞으나, 정서상 한국 문화에 초점이 돼 있다는 평이 존재한다. 곡의 후렴을 차지하는 반복되는 문구 ‘아파트’ 역시 중독성은 넘치지만, 이 역시 국내 팬들에게만 익숙하며 해외 팬들에겐 별다른 의미 없는 파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곡의 높은 완성도를 비롯해, 글로벌 아티스트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협업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흥행을 맛봤다.
이게 전부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의미가 아닌 퍼포먼스 위주의 아이돌 음악이 주를 이루는 K팝의 한계라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그간 방탄소년단의 경우도 그랬지만 로제 노래 역시 흥행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성공적인 곡”이라면서도 “그래미의 성격상 다른 시상식과 달리 음악이 가져다주는 의미와 형태에 집중한다. (타 시상식과) 더욱 차별화를 강조하고 수상자를 가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미는 집단(그룹)이 전하는 음악적 서사보다 개별 아티스트가 음악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을 높게 평한다. 다만 이는 방탄소년단 등 일반적인 아이돌 그룹과는 다른 결이기 때문에 이번 로제의 수상 가능성을 높게 책정했다. 하지만 이번 수상 결과로 K팝 아티스트들이 지닌 음악색이 현지 관계자들이 요구하는 음악성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는 걸 방증했다.
유독 K팝을 외면하는 그래미라고 보면 될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이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부문을 수상한 점을 미루어 보면 과거보단 호의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물론 ‘골든’은 해당 수상 외에 4개 부문에서 고배를 마셨다.
또한 K팝 요소가 많이 가미된 곡들이 노미네이트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던 미국 음악 시장도 점점 K팝을 주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엿보게 한다.
K팝 아티스트들에게 그래미의 벽은 굳건했다. K팝 최고 아티스트로 꼽히는 방탄소년단과 로제가 문턱에서 좌절을 경험했다. 이는 실패가 아닌 K팝의 성장과 변화해야 할 점을 상기시켜주는 대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