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준이를 보며 안쓰럽기도 했고, ‘나도 저랬는데’ 싶기도 했고, ‘상처를 많이 안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것과는 별개로 ‘이렇게 해봐’ 하고 뭔가 키를 주고 싶기도 했죠.”
넷플릭스 새 시리즈 ‘멜로무비’(극본 이나은·연출 오충환)에서 천재라 자부하지만 현실은 무명 작곡가인 홍시준 역을 연기한 이준영(29)은 “제가 갖고 있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었는데 주변에서도 ‘제가 보인다’는 반응이 많아 기분 좋았다”고 말했다.
홍시준은 학창 시절부터 늘 자신을 믿어준 여자친구 손주아(전소니 분)와 연애 7주년에 갑작스럽게 이별 통보를 받게 된 후 5년 만에 작곡가와 시나리오 작가로 재회하게 되는 인물이다. 이준영은 손주아와의 재회, 그 후의 사연을 쫄깃한 케미스트리와 섬세한 연기로 그려내며 호평을 끌어냈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그의 연기는 어딘가 달라보였다. 힘을 툭 뺀 생활 연기 덕분에 현실감 있게 더 와닿았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이준영은 “매번 ‘왜 이렇게 힘을 많이 줬냐’는 피드백을 받았는데, 이번엔 정말 힘을 한 번 빼고, 진짜 평소 내가 하는 것처럼 해보자는 마음이었다”고 운을 뗐다.
“물론 대사의 맛이나 어미들은 살리되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보는 게 목표였어요. 최우식 배우의 팬이기도 했는데,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를 보면서 나도 저런 식의 표현을 해보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죠. 같이 호흡을 맞춰가면서 빨리 친해졌고, 장난치듯 편안한 모습이 나온 것 같아요. 찍으면서도 ‘이런 커플 100% 있다’ ‘와 정말 현실적이다’ 그랬어요.”
“한 번이라도 살면서 느껴봤던 감정이 있는 캐릭터를 선택하는 편”이라는 그는 ‘홍시준’ 캐릭에서 과거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됐다고 털어놨다.
“음악을 꾸준히 해오면서 성공에 대한 갈망이나 자기비판 그런 것들이 있었는데 옛날 제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어요. 아이돌 시절 때 곡을 만들어 회사에 내면 항상 ‘X’ 였어요. ‘어, 뭐가 문제지?’ ‘나한텐 이런 창작의 재능이 없는 건가’ 생각하면서도 초반엔 오기로 더 만들어냈던 것 같아요. 그땐 잠도 안왔죠. 대본을 보는데 그 감정에 지배되어서 보게 되더라고요. 시준이에게 그래서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이준영은 ‘홍시준’을 “연애에 서툰 사람“이라고 봤다. “손주아(전소니)가 처음 만난 사람이자 마지막 만난 사람이다고 생각했다”며 “겉으론 강한 척 털털한 척 하지만 여린 친구”라고 소개했다. 이어 “유일하게 캐릭터에 공감한 건 잠수이별이라고 생각한 그 지점과 음악에 대한 성공 욕구와 그 패배감이었다”고 돌아보며 “실제 제 모습과는 뭐 하나 우직하게 하는 것, 포기하지 앟는 것, 안 되어도 붙잡고 늘어지는 게 비슷했다”고 덧붙였다.
‘홍시준’은 7년 연인 손주아와 헤어진 뒤 5년 만에 재회하지만, 끝내 함께할 수 없음을 깨닫고 완전한 이별을 한다.
이준영은 “잘 된 결말”이라고 말했다. “아름답게 헤어진 것 같다”며 “다시 노력해서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보다는 현재 본인 모습을 인정하는 게 더 맞는 방법이라 저는 느꼈다”고 이별 엔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항상 주아가 챙겨주고 맞춰줬고 시준이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익숙함에 속아서 소중함을 잃은 케이스죠. 이준영 입장에선 되게 답답했어요. 촬영하면서 ‘주아가 나쁜가, 시준이가 별로인데’ 그런 얘길 나눈 적도 있어요. 특히 우동집에서… 진짜 별로였어요.”
이준영은 전소니와의 연기 호흡에 대해 “나이차가 조금 나는 편이긴 한데 그런 벽을 좀 허물어줬다”며 “똑똑하고 통통 튀는 매력을 갖고 있는 배우이고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장면에선 해석이 조금 달랐지만, 그대로 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5년이란 세월을 안 보고 지냈으니 이 상황들이 맞는 것 같았다”는 비하인드도 덧붙였다.
“순간순간 따뜻함이 너무 좋았어요. 본인 아니게 악역을 좀 했는데(웃음) 저도 힐링되는 느낌이었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듯한 느낌이랄까. 너무 편안했죠. 마음적으로나 심적으로도. 같이 작업했던 분들이 ‘너도 가만히 있을 수 있구나’ ‘너 감정 연기하는것 보니까 좋다’ ‘그만 좀 싸우고 다녀라’고도 했는데,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이준영은 2014년 그룹 유키스 멤버로 합류해 활동하다 2017년 ‘부암동 복수자들’을 통해 연기자로도 데뷔했다. 2018년 ‘이별이 떠났다’로 ‘MBC 2018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이준영은 ‘미스터 기간제’, ‘굿캐스팅’, ‘편의점 샛별이’,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 ‘이미테이션’, ‘너의 밤이 되어줄게’, ‘일당백집사’ 등 다양한 작품에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2021년 넷플릭스 시리즈 ‘디피(D.P.)’에선 탈영병 역을,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와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는 강렬한 악역 캐릭터를 소화했다.
다작 배우로 연이어 캐스팅 소식을 전해주고 있는데도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굉장히 높은 편”이라고 했다. 한때는 연기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대체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아서. ‘멀리서 응원한다’는 말이 너무 좋아서, 책임감이 확 들어서, 그래서 이빨 꽉 깨물고 버텼다”고 말했다.
“‘멜로무비’에서 위로 받았던 대사가 있어요. ‘남들이 그만두라 하기 전에 내가 내 주제를 알고 그만둬야지’ 대사였는데 먹먹해지더라고요. 옛날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죠. 예전엔 시준이처럼 너무 성공하고 싶고 너무 잘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요. 이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깨달은지 얼마 안 되어서… 지금 제가 바라는 건 이대로 사건사고 없이 쭉 가는 겁니다. 데뷔 후 11년간 사고 안 친 건 잘 했다고 말해주고 싶고요.”
이준영은 올해 ‘멜로무비’ 이후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약한영웅 Class 2’, KBS2 드라마 ‘24시 헬스클럽’까지 차기작 3편 공개를 앞두고 있다. 서른의 문턱에서 늦어도 내년엔 입대도 예정됐다.
“저는 빨리 가고 싶은데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서른 문턱까지 왔네요. 제 생각대로라면 작년부터 저는 이미 군대에 있어야 해요. 어떤 세상일까 기대돼요. 지금 대한민국 20대 남성들은 저보다 먼저 경험한 또 하나의 사회잖아요. 군대 갔다 오면 여러모로 성장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그게 제 앞으로 연기 생활에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