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이 딸과 생이별했던 아픈 기억을 꺼냈다.
20일 오후 방송된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는 국민가수 심수봉이 출연해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날 방송에서 심수봉은 첫 번째 명곡 ‘그때 그 사람’과 얽혀 있는 사연을 꺼냈다. 그는 이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하고 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불렀지만 입상하지 못했다고.
당시 심수봉의 무대를 본 레코드 회사 사장님이 “내가 음반을 낸다면 쟤다”고 싶어서 바로 계약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심수봉의 첫 앨범은 따로 존재했다고.
심수봉은 한 호텔에서 피아노 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어떤 가수가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가수가 나훈아와 친분이 있었다. 나훈아의 노래 중 ‘물레방아 도는데’를 불러드렸는데 반응이 너무 좋더라. 그래서 음반을 낸 게 나훈아가 선물해 준 ‘여자이니까’였다”며 대학가요제 출전 전에 이미 앨범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음반사 분쟁으로 발매가 취소되어 앨범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집안이 5대에 걸쳐서 국악을 했다는 심수봉은 “중고제(조선 후기부터 20세기 초까지 경기·충청 지역에서 전승된 판소리 유파)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 바로 저다. 갓난아기 때 누워 있는데 이모랑 어머니가 노래 부르니까 제가 발가락으로 박자를 맞췄다고 하더라. 어머니가 ‘얘 가수 안 시키며 원망 듣겠다’라며 5세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했다”며 DNA부터 남다른 음악가 집안이라고 알렸다.
두 번째 명반은 ‘사랑밖에 난 몰라’. 10·26사태 트라우마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심수봉은 이때 이 음악을 만들었다고. 방송 금지곡도 많았다는 그는 ‘무궁화’, ‘순자의 가을’이 대표적인 곡이라고.
‘순자의 가을’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이순자’의 이름과 같아 금지됐다고. 심수봉은 “그걸 만들기 전에는 전혀 그분을 알지 못할 때였다. 그분이 알려지지도 않았을 때 만든 거였다. 그걸 ‘올 가을엔 사랑을 할 거야’로 바꿨다”고 털어놨다.
또 심수봉은 남편과 어떻게 만났는지 러브스토리도 들려줬다. 라디오 ‘심수봉의 트롯 가요앨범’ 당시 프로듀서가 남편이었다면서 10·26사태 피해자가 된 것에 대해 같이 공감하며 애정을 키웠다고 말했다.
심수봉은 사주팔자에 남자가 없다면서 “교회 사모님이 사주팔자 신경 쓰지 말라면서 PD양반 돈도 모르고 최고라고 했다. 유부남인 줄 알았는데 이혼한 지 2년 됐다더라. 그 순간 큐피드가 꽂힌 거다”고 밝혔다. 그는 “남편과 나이 차이가 조금 있다. 남편이 나이가 조금 적다. 사랑을 감정을 품고 있는데 혼자 산다니까 마음이 뛰더라. 그래서 명곡이 탄생한 거다. 남편을 향한 사랑을 담은 노래가 ‘비나리’다”라며 부끄러운지 소녀처럼 웃었다.
이어 “차에서 이 노래를 들려줬다.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었다. 피아노 친 거를 카세트테이프에 넣고 제가 노래를 직접 불렀다. 계속 불러달라고 해서 총 8번 불렀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김주하는 “선배, 그때 마음의 문을 열었냐”며 스튜디오에 온 심수봉의 남편을 놀렸다.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한 명이 있다는 심수봉은 딸과 8년 동안 떨어져 지냈다고. 전남편이 딸을 보고 싶다고 연락했지만 심수봉은 믿지 못해 아이를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유모가 본인이 책임지고 아이를 다시 데려오겠다고 약속하자 심수봉은 미심쩍은 마음으로 5세 딸을 전남편에게 보내줬지만 8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고.
심수봉은 “중학교 때 그 아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가수 사인을 좀 받아달라고. 핑클 사인. 아이가 뭔가를 부탁하는 것 자체가 (고맙더라). 바로 사인을 보내줬다.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얼마 전에 만났다”고 덧붙였다.
딸이 그리워서 쓴 곳이 ‘아이야’라고. 심수봉은 딸과 2년 동안 미국에 가서 같이 일상생활을 보내며 잃어버린 시간을 치유했다고 말했다.
1978년 데뷔한 심수봉은 ‘그때 그 사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 등 다양한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9일 ‘품어줄 안아줄’을 발매하며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은 토요일 오후 9시 40분 방송된다.
[서예지 스타투데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