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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 스트립을 좇은 10년, 결국 마주한 건 ‘우리’였다 [MK무비]

한현정
입력 : 
2026-10-28 07:00:00
‘덕심’ 하나로 시작된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 10월 28일 개봉
우상을 향한 러브레터가 여성들의 연대로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 스틸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 스틸

메릴 스트립을 만나고 싶었다. 그에게 받은 용기를 돌려주고 싶었다. 한 사람의 뜨거운 ‘덕심’에서 시작된 무모한 도전은 1619명의 마음을 만나 영화가 됐고, 그렇게 10년을 달려 마침내 극장에 도착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감독 박효선)는 할리우드 배우 메릴 스트립을 동경해온 박효선 감독이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카메라를 들면서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다.

출발은 소박했다. 박효선 감독은 중학생 시절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통해 메릴 스트립을 처음 접한 뒤 오랫동안 그의 연기와 삶을 동경해왔다. 2016년에는 SNS 계정 ‘메릴 스트립 정보봇 한국본부’를 만들어 관련 소식을 나누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점점 커졌다. 정보를 찾아 나누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신이 메릴 스트립에게 받은 용기를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직접 그를 만나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다소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자필 편지를 쓰고 영상 메시지를 만들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할리우드 스타에게 닿을 방법을 찾아 헤맸고, 숱한 거절과 현실적인 벽에도 부딪혔다. 평범한 ‘팬심’에서 시작된 일이 어느새 카메라를 든 한 여성 영화인의 집요한 프로젝트가 됐다.

혼자였던 도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2019년 진행한 크라우드펀딩에는 1619명이 참여했고, 6256만4000원이 모였다. 목표 금액의 156%였다. 누군가의 우상을 만나겠다는 엉뚱한 꿈에 1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과 돈을 보탰다.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 포스터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 포스터

바로 이 지점부터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는 단순한 ‘성덕 도전기’에서 벗어난다.

카메라가 좇는 대상은 분명 메릴 스트립이지만 영화의 시선은 점차 그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로 이동한다. 박 감독은 영화계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움직임에 참여하고 페미니스트 영화인 모임 ‘찍는페미’를 결성하는 등 여성 영화인으로서 자신의 현실과 마주한다. 프로젝트가 이어지는 동안 한국 사회 역시 빠르게 변한다.

그렇게 개인적인 동경으로 출발한 카메라에는 어느새 한 시대를 통과하는 여성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담긴다. 우상을 향해 가던 길 위에서 같은 고민을 품고 살아가는 동료들을 만나고, 혼자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함께 밀어주는 연대를 경험한다.

시간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상 밖의 장벽까지 만났다. 처음 상상했던 목적지로 곧장 달려갈 수 없게 되면서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방향을 수정해야 했다.

그러나 계획이 틀어진 자리에서 오히려 영화의 진짜 얼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메릴 스트립을 만나느냐, 만나지 못하느냐는 어느 순간 이 여정의 유일한 답이 아니게 된다. 한 명의 우상을 좇아 출발했던 박 감독은 지난한 제작 과정 속에서 자신과 함께 걷는 수많은 ‘우리’를 발견한다. 누군가에게 받은 용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너가고, 그 마음들이 모여 끝내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한다.

그래서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에서 메릴 스트립은 가장 중요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전부는 아니다. 그 이름은 10년 가까운 여정을 움직인 최초의 동력이고, 영화는 그 동경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좇는다.

긴 제작 기간을 거친 작품은 2024년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 장편 부문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광주여성영화제 등을 거치고 런던한국영화제에서도 관객과 만났다. 영화제를 돌며 차곡차곡 관객을 만나온 작품은 이제 28일 정식 극장 개봉으로 더 많은 관객 앞에 선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제목에 거대한 할리우드 스타의 이름을 내걸고도 정작 영화가 오래 바라보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라는 점이다. 좋아한다는 감정 하나로 무모한 일을 벌인 사람, 그 무모함을 응원한 사람, 같은 시대를 견디며 서로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의 기록이다.

과연 박효선 감독의 진심은 지구 반 바퀴 너머 메릴 스트립에게 닿았을까. 영화는 그 답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 결과만큼 중요한 것은 그곳까지 가는 동안 벌어진 일들이다. 우상을 만나기 위해 시작한 여행에서 가장 선명하게 발견한 것은 결국 자신과 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메릴 스트립을 좇은 10년. 그 긴 러브레터의 수신인은 어쩌면 처음부터 한 명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103분. 12세 이상 관람가. 10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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