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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 박해일 “왜 이제야 영화화됐나 싶어…각자의 ‘정도’ 생각하길” [인터뷰]

한현정
입력 : 
2026-09-10 14:11:27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모티브…집념의 사회부장 변신
“김대명·류혜영 재회 든든…이민호 ‘70년대 신성일’ 같더라”
사진 I하이브미디어코프
사진 I하이브미디어코프

배우 박해일(50)이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다. 52년 전, 진실을 좇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기자가 돼서다.

영화 ‘암살자(들)’(감독 허진호)는 1974년 8월 15일 제29회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발생한 고(故)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전 국민이 TV 생중계로 목도했던 사건에서 출발해 공식 발표 뒤에 남겨진 의문과 사라진 총탄의 행방을 좇는다.

박해일이 연기한 ‘재환’은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사회부 부장이다. 서슬 퍼런 유신시대, 검열과 압박에도 펜을 놓지 않는 언론인이다.

무려 4년 만의 영화다.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암살자(들)’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박해일은 “허진호 감독님을 기다렸나 봐요”라고 로맨틱하게 답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감독님이 1970년대의 일을 다루시는 건 처음이시잖아요. 저 역시 이 시대에 태어나긴 했지만 제가 태어나기 전에 벌어진 굵직한 사건인지라 흥미롭고 궁금해서 해보고 싶더라고요. ‘나도 이 기회에 공부하고 알아가고 싶다’고 말씀드리면서 출연을 결정했죠.”

사건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까지 알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작품을 만나 제대로 들여다본 뒤 놀라움이 커졌다.

“자연인으로서는 능동적으로 찾아본 적이 없어요. ‘이런 굵직한 일이 있었다’고 인지하는 정도였죠. 영화를 통해 제대로 알고 나서는 ‘아니, 왜 아직까지 이게 영화화되지 않았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찰 만큼 놀라웠어요. 한국 영화에서 새로운 영화적 장르로 가져가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영화 ‘암살자(들)’ 박해일 스틸
영화 ‘암살자(들)’ 박해일 스틸

다만 실제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박해일은 촬영 내내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첫 촬영을 마칠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 시대에 제대로 들어와 있는 건가’ 하는 확신이 오지 않았어요. 내내 돌다리를 두드리듯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죠. 우리가 이 시대적 느낌으로 맞게 가고 있는지 동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신, 한 신 임했어요.”

시대적 자료와 다큐멘터리도 참고했지만 거기에 매몰되지는 않으려 했다. 큰 시대적 맥락만 품은 채 영화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에 온전히 들어가는 쪽을 택했다.

특히 재환은 다른 등장인물에 비해 알려진 과거사가 많지 않은 인물이다. 박해일에게는 오히려 그 점이 매력적이었다.

“과거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좋았어요. 저에게 주어진 사건과 직업적 특성, 상황에 더 깊게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캐릭터를 구현해나가는 재미가 있었고, 작품 안에서 철저하게 제 역할에 집중하면 되는 인물이었어요.”

무엇보다 ‘기자처럼 보이는 것’부터가 숙제였다. “제 역할이 기자이다 보니 제가 앉아 있는 자리부터 자연스러운지, 그 느낌을 찾아가는 데 정말 온 집중을 다했어요.”

그렇게 완성된 재환은 요란하지 않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상대를 꿰뚫는 듯한 눈빛으로 신념을 드러낸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구둣발에 짓밟히면서도 진실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절정은 ‘자유언론실천 선언문’을 읽는 장면이다. 줄곧 감정을 억눌러온 재환이 마침내 자신의 신념을 목소리로 폭발시키는 순간이다.

박해일에게도 만만치 않은 장면이었다. 그는 “관객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낯설고 조금 어색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부분을 염두에 두면서 촬영에 임했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런데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자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이 찾아왔다. 박해일은 그 경험을 ‘무중력 상태’라고 표현했다.

“가끔, 어쩌다 아주 가끔 테이크를 가다 보면 ‘무중력 상태’ 같은 게 한두 번 나올까 말까 해요. 고맙게도 이 장면이 그랬어요. 무수히 많은 테이크를 가진 것도 아니고 두세 번 정도 갔는데, 그런 순간이 와줬어요.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습니다.”

영화 ‘암살자(들)’ 이민호 스틸
영화 ‘암살자(들)’ 이민호 스틸

함께한 동료 배우들에 대한 믿음도 컸다. 김대명과는 이미 강렬한 호흡을 맞춰본 사이여서 “‘아’ 하면 ‘어’ 하는 관계”였고, 류혜영과도 오랜만에 재회했다.

“혜영 씨는 배우로서 워낙 팬이에요. 워낙 대범하고 거침없는 친구라 멋지잖아요. 이번에도 홍일점 기자로서 정말 잘해줬기 때문에 믿음이 컸어요. 서로 동료의식이 끈끈해서 자연스럽게 케미가 나온 것 같아요.”

이민호와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다. 첫 만남을 떠올리던 박해일은 웃음을 터뜨렸다. “만나자마자 진짜 훤칠하고 잘생겼더라고요. ‘신문사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이게 바로 영화네’ 싶었어요.(웃음) 동시에 감독님의 수가 읽혔죠. 왜 그여야 했는지.”

외모에 대한 단순한 감탄만은 아니었다. 이민호가 가진 스타성과 분위기가 1970년대라는 시대와 만나 예상 밖의 영화적 매력을 만들어냈다고 봤다.

“민호 씨가 연기한 캐릭터가 영화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부분이 관객분들에게도 흥미롭지 않을까 싶고요. 70년대 신성일 선생님 같은 느낌도 나면서…. 우리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보석이었다고 생각해요.”

영화 ‘암살자(들)’ 스틸
영화 ‘암살자(들)’ 스틸

그 모든 배우를 하나의 판 안에서 움직이게 한 사람은 허진호 감독이다. ‘덕혜옹주’ 이후 두 번째 호흡. 박해일은 허 감독을 자신이 아는 감독 가운데 “가장 온화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현장에서 배우들과 워낙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만들어가는 스타일이에요. 이번에도 감독님 특유의 방식 덕분에 배우와 스태프 모두 자기 영역에 몰두하고 올인할 수 있었어요. 솔직해지고 자유로워지죠. 서로 무장해제되는 현장이랄까요. 감독님에게는 그렇게 강한 신뢰를 주는 면이 있어요.”

두 번째 만남인 만큼 익숙함에만 기대고 싶지는 않았다. “‘덕혜옹주’ 때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감독님 특유의 익숙한 스타일에는 노련하게 적응하되 새로운 부분에는 또 도전하면서, 그 두 가지를 조화롭게 가져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죠.”

52년 전 사라진 두 발의 총탄을 따라가는 영화에서 박해일은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진실을 좇는다. 보고, 묻고, 의심하고, 기록한다. 그리고 끝내 펜을 놓지 않는다. 거창한 영웅으로 포장하지 않아 더 힘이 있다. 진실을 좇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오늘의 관객에게 되묻는다.

“이 시대에도 형태나 방법은 달라질 수 있지만 각자의 ‘정도(正道)’를 걸어가길 바라는 마음은 있어요. 꼭 제가 연기한 기자만이 아니더라도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에 맞게 추구해야 할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가 말한 ‘정도’는 기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가 달라지고 방식이 변해도 자신의 자리에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 4년 만에 돌아온 박해일이 ‘암살자(들)’을 통해 꺼내놓은 질문이기도 하다.

박해일은 “그것에 대해 관객분들이 저마다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암살자(들)’은 오는 2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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