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제주어 걱정…감수자와 일대일 과외하듯 연습”
“만 6세 아역배우와 호흡…새로운 ‘배려’ 알게 돼”
영화 ‘마음이’로 만 6세에 데뷔해 20주년을 맞은 배우 김향기가 첫 엄마 역할에 도전한 소감을 전했다.
김향기는 영화 ‘한란’(감독 하명미) 개봉을 앞두고 18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란’은 1948년 제주를 배경으로, 살아남기 위해 산과 바다를 건넌 모녀의 강인한 생존 여정을 담은 영화다. 김향기는 ‘한란’에서 ‘제주 4·3’ 사건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 아진 역을 맡아 열연했다.
아역 배우 출신으로 만 25세에 첫 엄마 연기에 도전한 김향기는 “다들 제가 엄마 역할을 한다는 것에 놀라워하셨는데, 시나리오 읽는 단계부터 촬영 끝마칠 때까지 한 번도 엄마 역할을 한다는 것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다”며 “그 시대의 제 나이는 어머니인 경우가 많았고 또 세상에 다양한 어머니상이 있으니, 엄마로서 뭘 보여줘야한다는 것보다는 역할을 잘 맞춰가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향기는 작품 선택 이유로 “시나리오가 정말 좋았다”는 것을 꼽으며 “하고 싶은 작품이라도 텍스트를 읽었을 때 잘 안 넘어가면 결정하기가 어려운데, ‘한란’은 금방 상상이 되면서 글이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하명미 감독을 만나 가장 듣고 싶었던 것도 ‘구현’의 가능성이었다고. 김향기는 “작품이 너무 좋으니까 이게 그림이 구현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는데, 감독님께서 촬영 장소나 제주어 감수 등의 계획을 명확하게 설명해주셔서 믿음이 갔다”며 “이런 캐릭터일수록 감독님과의 대화나 안정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한란’은 100% 제주어를 사용한 영화다. 특히 현 시점의 제주어가 아닌, 1948년 당시 사용하던 제주어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 때문에 김향기가 가장 걱정했던 것도 제주어였다고.
“제주어 감수자 분과 일대일로 과외하듯 연습했어요. ‘캐셔로’와 촬영이 겹쳤는데, 이동할 때 많이 듣고 따라 했죠. 처음에는 사투리로 접근을 하다 보니 감정이 잘 섞이지 않았는데, 제2 외국어처럼 ‘다른 언어다’라고 접근을 하니 감정이 잘 섞이게 되더라고요.”
당시 시대상을 살리기 위해 많은 이의 노력이 들어간 만큼, ‘한란’은 실제 제주도민들의 극찬을 받았다. 김향기는 “개봉 전 첫 상영을 제주도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 너무 좋았는데, ‘잘 봤다’고 긍정적 표현을 많이 해주셔서 정말 힘이 많이 됐다”며 기분 좋은 시사 후기를 전했다.
작품을 만나기 전에는 ‘4·3 사건’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김향기는 준비 과정에서 사건을 더욱 깊이 접하게 됐다. ‘4·3 기념관’ 등을 찾으며 공부했다는 그는 “감독님이 보내주신 책 중 여성들의 증언집이 있는데, 읽으면서 참 괴로웠다”고 떠올렸다. 사건을 겪지 못한 현 시대 사람으로서 작품 출연 전후로 달라진 시선은 있었을까.
“작품이 사건으로 중심을 끌고가기 보다는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점으로 가는 게 많았어요. ‘4·3 사건’ 속 모녀의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닿을 수 있게 풀어나가는데, 현 시대 사람이 아닌 그 안에 있는 인물로서 다가가게 됐죠. 아진이나 제주도민들의 입장에선 이게 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나는 내 딸과 찢어져야 하고, 내 일상이 뒤집힌 일이 된 거잖아요. 그래서 현 시점에서 바라본다기보다는 안에 담겨 있는 인물로서, 감정으로서 보게 됐던 것 같아요.”
‘한란’ 속 김향기가 연기한 아진은 딸 해생(김민채 분)을 찾기 위해 산을 오르고 내리며 고군분투한다. 이를 두고 김향기는 “제가 맡았던 캐릭터들 중 책임감이 많이 컸던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아진이의 목표는 ‘해생이를 만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는 것이 너무 명확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괴로운데 괴로울 틈 없는 상황이 연속됐죠. 괴롭다는 감정이 들기도 전에 해생이를 바라보고 가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서, 괴롭다는 감정이 파고들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죠. 그동안 했던 작품들의 감정선보다 좀 더 강인한 모습이지 않았나 싶어요.”
실제 겪어보지 못한 모성애를 연기하기 위해 책을 보고 공부했다고 전한 김향기는 “엄마가 되면 호르몬 체계가 자신도 모르게 바뀐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아진이도 무모해 보이지만, (엄마이기에) 저런 행동을 하면서 나아가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장면을 연기하다 보니 아이 앞에서 슬픔을 드러낼 것이 아니라는 감각들이 계속해서 나왔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극 중 아진의 딸을 연기한 아역 배우 김민채는 김향기와 닮은 모습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김민채는 김향기가 영화 ‘마음이’를 찍었던 만 6세에 ‘한란’의 해생이를 만났다.
“어릴 때 기억을 저도 떠올리려고 노력했는데 안 나더라고요. 제 기억 속 남은 이미지는 현장에서 엄마랑 쉴 때 나무에 열려있던 열매를 따 먹었던 그런 것이거든요. 즐거웠던 기억이라 남아있는 것이라 생각해서 민채에게도 놀듯이 촬영할 수 있게 한 부분이 많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김민채와의 호흡을 통해 ‘배려’에 대한 새로운 생각도 들었다고. 그는 “어린아이지만 본인의 연기를 하는 친구지 않나”라며 “내 입장에서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배려가 아닐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른들은 아무래도 아이를 챙겨주려고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게 아이에게는 오히려 부담일 수 있겠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건 민채가 한 배우로서, 편안하게 자기가 연습한 연기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 배려인 것이 아닐까 싶었죠.”
특히 김향기는 최근 현장에는 법적으로도 아역 배우를 보호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촬영 끝나고 나면 해생이라는 캐릭터가 아니라 민채로서 일상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민채도 (연기가) 가짜라는 것을 물론 알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하는 작업을 꾸준히 했다”고 설명했다.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은 김향기는 배우로서 들었던 고민도 숨기지 않았다. 20대 초반, 보여주고 싶은 새로운 모습과 어릴 적부터 사랑받아 온 이미지 사이에서 부딪히며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다고.
김향기는 “그때는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연기에 ‘틀’을 만들어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 시기마다 나에게 들어오는 작품들은 어느 정도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작품 선택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는 “이 작품, 책임감 갖고 해낼 자신이 있어?”라고 스스로 물어보고 답을 내리는 기준을 세웠다는 그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연기를 즐기게 됐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책임감의 무게를 물으며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는 김향기. 이를 증명하듯, 그는 제주 4·3 사건의 비극 속 딸을 향한 절박하고 강인한 모성애를 지닌 엄마 아진을 밀도 높은 연기로 완성했다.
첫 엄마 역할이라는 김향기의 새로운 도전을 담은 영화 ‘한란’은 오는 26일 개봉한다.
[김미지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