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톱. 옥주현의 실력에 이견은 없다.
레전드 걸그룹 핑클의 메인 보컬에서 출발해, 이제는 대극장 뮤지컬을 책임지는 정상급 배우가 됐다. 성량과 테크닉, 체력과 무대 장악력까지. 그의 이름은 곧 흥행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 자리는 하루아침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다.
그렇기에 지금 옥주현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문제의 출발점은 실력이 아니라 태도, 더 정확히는 ‘위상에 걸맞은 태도인가’라는 질문이다.
최근 불거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캐스팅 편중 논란과 이에 대한 옥주현의 SNS 발언은 그 질문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내 죄명? 내가 옥주현이라는 것”이라는 문장은 억울함의 토로였겠지만, 동시에 논의를 감정의 영역으로 밀어 넣었다. 제작 구조와 배분의 문제는 사라지고, 개인에 대한 호불호만 남았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2022년, 뮤지컬 ‘엘리자벳’ 캐스팅을 둘러싼 이른바 ‘옥장판’ 논란이 그랬다. 당시에도 쟁점은 실력이 아니었다. 문제로 지적된 것은 특정 배우와 특정 라인에 집중된 캐스팅 구조, 그리고 그 중심에 옥주현이 있다는 인상이었다.
당시 새로운 주연으로 옥주현과 같은 소속사에 몸담으며 친분이 있던 이지혜가 더블 캐스팅됐고, 엘리자벳을 두 차례 맡았던 김소현은 명단에서 빠졌다. 일부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고,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이는 배우 김호영이었다.
김호영은 업계에서 ‘마당발’로 불릴 만큼 수많은 작품과 동료를 거쳐온 인물이다. 주연보다 조연으로, 스타보다 동료로 현장을 지켜온 배우다. 그런 그가 공개적으로 ‘옥장판’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개인적 감정이라기보다, 현장 내부에 누적돼 있던 불편함이 수면 위로 드러난 장면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논란이 남긴 인상은 분명했다. 옥주현은 당시 “수백억 프로젝트의 모든 권한은 제작사에 있다”고 강조하며, “사실 관계 없이 주둥이와 손가락을 놀린 자는 혼나야 한다”고 강하게 반응했다. 이후 김호영과 일부 네티즌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 대응은 또 다른 질문을 낳았다. 왜 이렇게까지 강경해야 했는가.
사태가 커지자 뮤지컬 1세대인 남경주, 최정원, 박칼린은 ‘모든 뮤지컬인들께 드리는 호소의 말씀’이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전수경, 김소현, 차지연, 신영숙, 정선아, 정성화, 최재림 등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배우들도 뜻을 함께했다. 이례적인 집단 목소리였다.
특히 남경주의 발언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그는 “김호영의 표현이 정확히 캐스팅 문제를 겨냥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면서도 “왜 그렇게 과잉 반응을 했는지 의아했다. 전화 한 통으로 풀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기 발이 저린 건지 모르겠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이 성명은 옥주현 개인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남경주는 “뮤지컬이 활성화돼야 할 시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앞으로는 이런 일을 계기로 모두가 한 번쯤 돌아보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문제는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이 업계가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야 하느냐’였다.
뮤지컬 업계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 논란은 더 또렷해진다. 대극장 뮤지컬은 ‘이름값’에 크게 의존하는 시장이다. 제작사는 안정적인 티켓 파워를 원하고, 그 결과 검증된 배우에게 회차와 무게가 쏠린다. 이 구조 자체가 불법도, 비정상도 아니다. 문제는 그 영향력이 어떻게 사용되느냐다.
정상에 오른 배우에게는 선택권이 생긴다. 그리고 동시에, 그 선택을 조율할 책임도 따라온다. 후배와 동료의 자리를 의식하는가, 아니면 결과만을 향해 직진하는가. 이 지점에서 스타의 품격이 갈린다.
옥주현은 일관되게 ‘일은 잘하지만, 관계 서사는 약한 배우’로 소비돼 왔다. 핑클 멤버들과의 끈끈한 관계는 잘 알려져 있지만, 뮤지컬 업계 내에서는 유독 ‘내 사람, 내 라인’이라는 인상이 반복적으로 언급돼 왔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런 이미지가 고착됐다는 점 자체가 이미 리스크다.
더 아쉬운 대목은 대응 방식이다. 지금의 옥주현은 해명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 있다. 말하지 않아도 무대가 증명하고, 한 작품만으로도 평가가 끝나는 배우다. 그럼에도 그는 반복적으로 방어적인 언어를 선택해 왔다. 설명하고, 억울함을 말하고, 감정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 순간 여유는 사라지고, 논란은 증폭된다.
대조적인 사례는 적지 않다. 조승우, 조정석, 정성화 같은 배우들은 더 높은 위치에서 더 조용하다. 후배와 동료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논란의 중심에 서지 않는다. 무대는 공유하지만 영향력은 절제한다. 그래서 미담이 쌓이고, 신뢰가 남는다. 그리고 오래 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옥주현의 실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어쩔수가없다’는 말은 편리하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배우에게 그 말은 변명이 된다. 이미 증명된 배우라면, 이제 필요한 것은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더 성숙해지는 것이다.
무대 위의 완성도만큼, 무대 밖의 품격이 따라올 때. 그의 이름은 논란이 아니라, 전설로 남을 수 있다. 여전히 빛나는 핑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