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귀환이라는 말은 언제나 우리를 들뜨게 한다.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도 그랬다. 국내 최대 배급사 CJ, 초호화 배우 캐스팅, 거장의 브랜드, 개봉 전 이미 해외 캠페인을 마친 ‘준비된 성공작’. 개봉 전부터 ‘천만 예약작’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업계는 거의 확정적으로 흥행을 점쳤다.
거장의 이름값이, 톱스타들의 대거 출연이, 모든 것을 보증하는 듯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평단의 평가는 엇갈리고, 관객 평점은 싸늘했으며,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렸다. 흥행은 293만. ‘박찬욱 × CJ × 올스타 캐스팅’이라는 공식을 감안하면, 이 성적표는 분명히 기대 대비 사실상 실패다.
부산에서 만난 한 영화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말했다.
“거장이라는 이름이 기대치를 너무 높여놨죠. 작품이 그 무게를 채우진 못했습니다.”
한 배급 실무자 역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런칭 단계에서 마케팅 자체는 이미 끝난 상태였고, 반응은 당연히 따라올 줄 알았어요. 결과는 의외였죠. 사실 좀 민망했어요.”
선명한 스타일·거장의 아우라는 여전했지만, 감정선 설계의 아쉬움, 캐릭터의 불균형, 서사는 공허하다는 지적까지 일었다. 무엇보다 거장의 흔들리는 리듬은 관객이 가장 정확하게 알아챘다.
그리고 어제, 청룡이 또 한 번 생채기를 남겼다
손예진은 훌륭한 배우다. 커리어도, 연기력도, 대중성도 이미 증명된 인물이다. 문제는 배우가 아니라 작품의 성취, 경쟁의 맥락, 축제의 의미다.
평단도, 관객도, 흥행도 미지근했던 작품이 최우수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남우주연상을 싹쓸이했다.
반면 2억 저예산의 놀라움을 만든 연상호 감독의 ‘얼굴’은 무관, 올해 최고 흥행작 ‘좀비딸’은 관객상 하나, 60대 여성 킬러라는 특수한 서사를 빛낸 ‘파과’ 역시 빈손이다. ‘하얼빈’은 현빈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날 최고의 투샷은 말할 것도 없이 스타 부부 배우 현빈·손예진이었다. 레드카펫부터 시상식까지 ‘그림’은 완벽했다. 인기상 동반 수상만 해도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그러나 가장 유력했던 박정민(‘얼굴’), 이병헌(‘어쩔수가없다’)을 제치고 현빈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어 (상대적으로) 분량도 존재감도 적었던 손예진이 여우주연상으로 호명되며 장내 공기가 달라졌다. 예쁘고 로맨틱했고 화제성은 최고였지만, 모두가 박수칠 만한 명예였는지는 다른 이야기다.
한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조심스러운 듯, 하지만 단호했다. “작품 성과나 당위성이 아쉬운 상황에서 이런 큰 상이 가면 잡음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워요. 수상자 본인에게도 부담이죠.”
영화 축제의 ‘그림’을 위한 선택인지, 거장을 향한 예우인지, 부부 스타의 섭외 명분과 화제성(시청률)을 의식한 것인지 단정지을 순 없지만, 여우주연상 결과 만큼은 마냥 박수를 보낼 순 없었다.
결정적으로, 무대 위 배우들의 말이 그 아쉬움을 더 키웠다.
손예진은 “20대, 너무 힘들었던 시절 ‘청룡 신인상’이 버틸 힘이 됐다”고 회상했고, 김도연·박지현 등은 “상 욕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받고 나니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며 눈물을 쏟았다.
이들의 소감에서 상은 누군가에겐 경력의 한 줄이 아니라, 인생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계속 가보라고 등을 떠미는 힘, 그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할 영화제가 정작 그 기준을 스스로 희미하게 만든 것. 이토록 무거운 의미를 가진 ‘상’을, 정작 가장 가볍게 쓰고 만 셈이다.
결국 거장의 이름은 영화를 구하지 못했고, 관객은 속지 않았다.
그리고 상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진심으로 흘린 그 눈물 앞에서, 올해 청룡의 선택은 정말 ‘어쩔수가없었는지’ 되묻고 싶다.
추신, 의도된 손예진·현빈의 투샷…‘한 탕 장사’ 잘 하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