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LG아트센터 서울서 사흘간 오케스트라 콘서트 개최
데뷔 17년 차,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에 대한 고민 여전

“만든 음악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공연을 하고, 방송을 하는 거예요. 어떤 상업적 목적보다 가수로서 최대한 많은 분들께 음악을 들려드리는 게 제 직업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즉 공연은 제게 ‘발표회’인 수단이에요. 제가 가수로서 여전히 가능성이 있는지 증명되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데뷔 17년차 가수 정준일(41)이 음악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만든 음악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줬을 때, 어떤 느낌을 받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특별한 프로젝트나 OST를 제외하곤 내 노래는 나 스스로 곡을 만들고 부르려고 한다”는 정준일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훌륭한, 좋은 노래라고 단정 할 수 없다. 우리가 아는 히트곡 중 좋지 않은 것들도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우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퀄리티가 높은 걸 하고 싶고 수준있는 걸 지향하는 게 내 음악 방향성”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모처 카페에서 만난 정준일은 수더분한 모습과 달리 뼈 있는 음악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음악 감상은 소모되는 행위다. 특히 과거와 다르게 수많은 장르의 음악들과 가수들이 등장하며 음악계는 더욱 치열해진 상황. 정준일은 “플레이어로서 무대에 서고 음악을 전달하는 소통구는 이전보다 좁아진 느낌이다. K팝이 대형 산업이 되면서 발라더, 싱어송라이터들의 공연 무대가 많지 않기 때문에 더 활발히 활동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준일은 최근 ‘불후의 명곡’, ‘박보검의 칸타빌레’(이상 KBS), ‘복면가왕’(MBC) 등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 적극 출연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중 신분을 감춘 채 목소리로만 승부하는 ‘복면가왕’에서는 9연승까지 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그는 ‘복면가왕’ 출연 계기에 대해 “개인적으로 2~3년 전부터 가수 커리어에 뭔가 걸림돌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전만큼 대중성을 지닌 히트곡도 못 냈고 방송이나 매체 출연이 많이 없었다. 그런 시간들을 겪으며 내 음악이나 나란 가수가 주류와 멀어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며 “내 노래가 대중에게 얼마나 소구력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가수로서 여전히 가능성 있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알고 싶었던 그였다. 결론적으로 그는 국카스텐 하현우, 터치드 윤민과 함께 9연승이라는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운 인물로 남게 됐다.

정준일은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한 남모를 거부감과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콘서트를 여는 이유에 대해서도 “나를 뽐내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또 수익을 위함은 더욱이 아니다. 소극장이든, 더 넓은 공간이든 어디서든 내 음악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을 위해 내가 준비한 음악을 준비하는 발표회를 여는 것일 뿐”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같은 생각이 내성적 인물로 비쳐질 수 있지만 음악에서만큼은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이 분명했다. 정준일은 “주변에 음악하는 친한 형들이 많다. 윤종신, 유희열, 이승환, 이소라 등 자주 보진 않지만 연락은 주고받는 형들이다. 단 음악은 제외하고”라며 웃어보였다.
‘선배 가수들과 협업하거나 곡을 받아서 노래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나 혼자 최선을 다해서 만들고 싶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바꾸고 싶진 않은 영역이 음악”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과거 (윤)종신이 형이랑 작업했던 ‘월간 윤종신’ 수록곡은 형이 프로듀서이다보니 수긍하며 불렀지만 사실 형의 디렉팅을 잘 못받아들였다. 내가 추구하는 것과 조금 달랐기 때문”이라며 가창자로서의 고집을 보였다.
단 이 부분에서 느낄 수 있듯 정준일은 음악의 전체를 맡는 프로듀서에 대한 존중은 확실했다. 정준일은 자신이 유희열의 원맨 밴드 ‘토이’의 정규 7집 2번 트랙인 ‘리셋(Reset)’ 첫 보컬 녹음자였다고 고백했다. 세상에 공개된 ‘리셋’ 곡의 보컬은 가수 이적이 낙점됐다.
이에 대해 “곡 녹음을 다하긴 했는데 (유)희열이 형이 좀 더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다며 가수 변동이 있을 수 있다고 했었다. 그에 대해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쉬움도 없었고 온전히 프로듀서의 시선과 판단이기 때문에 너무 존중한다”라고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정준일은 지난해 10월 한 차례 공연을 열더니 올해 2월 다시 한 번 콘서트를 개최하며 팬들과 빠르게 호흡했다. 두 공연 모두 소극장에서 하는 만큼 그의 끈적한 보컬은 팬들의 귀에 깊게 스며들었다. 특히 밴드와 함께 했던 10월 공연과 달리 2월 공연은 피아니스트 권영찬과 단 둘이 꾸미는 ‘피아노 콘서트’로서 더욱 섬세한 음악을 들려줬다.
이 기세를 몰아 단 2개월 만에 규모를 늘려 LG아트센터 서울(약 1200석)로 장소를 옮겨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개최했다. 숨가쁜 일정에 정준일은 “힘들진 않다. 공연장 대관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기회가 생긴다면 어디든, 언제든 가서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라며 “욕심같아선 더 큰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고 싶은 게 솔직한 목표”라고 언급했다.
정준일의 음악 진가를 알아본 걸까. ‘박보검의 칸타빌레’ 출연으로 첫 인연을 맺은 배우 박보검 역시 그의 이번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관람하며 음악적 공유를 이어갔다.

보컬적으로 끊임없이 연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과거의 목소리에 대해 “다리미로 모든 주름을 다 펴고 부른 느낌”이라고 했다. 현재는 “음에도 질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입, 벌스부터 잘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그가 발표한 곡들 대부분 도입부부터 조용이 읊조리는 듯한 가창으로 리스너를 집중시킨다. 그는 “내 목소리가 기능적으로 고음에 강한 사람이 아니다보니 음색의 두께, 질감에 더 몰입하려고 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가수 생활도 꽤나 경력이 채워지면서 앞으로 해나가야 할 방향성도 설정한 모습이었다. 정준일은 “대중의 반응, 시선에 쫄지 말고 내 음악을 믿고 해볼 생각이다. 퍼포먼스보다 오로지 음악으로 무대를 끌고가는 것이다. 나만의 섬에서 내 페이스로 노래한다는 생각을 갖고 임하고 있다”라며 “청취층을 넓히는 것 보다 한 분 한 분이 내 음악을 깊게 듣고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이와 더불어 “스스로 헤비 리스너(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집단)로서 이 업을 안하게 되더라도 오랜 시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개인적 앞날도 그렸다.

끝으로 정준일은 인터뷰 중 가장 철학적이면서도, 가수가 아닌 ‘사람 정준일’을 느끼게 하는 답변을 남겼다.
“사람이 참 복잡한 존재라는 거.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거. 복잡미묘한 마음이에요. 일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행위가 시간이 점점 갈수록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해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면서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거 같고요. 말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인간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진짜 누군가를 걱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음악과 함께 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