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말이 돼?”… 얼떨떨한 흥행 소감
‘미사’ 이후 ‘김부장’이 활짝 열어준 연기인생 ‘챕터 2장’
“뭐 하나 신기하지 않았던 게 없어요. 지금 20%가 나온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시장이잖아요. 깜짝 카메라 당한 기분이었죠. 저도 놀랐고, 다들 놀랐던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광장’에 이어 SBS 금토 드라마 ‘김부장’까지 연달아 흥행 홈런을 날린 배우 소지섭을 만났다. 진중함 속에 툭툭 던지는 솔직함이 인터뷰 자리에 묘한 리듬감을 더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명장면·명대사가 회자되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 확실한 ‘챕터 2장’이 열렸다는 그의 얼굴에는 여유와 홀가분함이 가득했다. 이제는 “제 이름보다 ‘김부장’으로 더 많이 불린다”며 “누가 ‘김부장’ 하면 돌아보게 된다”며 웃었다.
최근 종영한 ‘김부장’에서 소지섭은 강렬한 액션과 섬세한 감정 연기를 오가며 인물의 입체감을 살렸다. 전직 비밀요원의 카리스마와 평범한 가장의 부성애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김부장’은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20%를 돌파했고, 2026년 미니시리즈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넷플릭스 비영어 TV쇼 부문에서도 글로벌 1위 행진을 이어가며 국내를 넘어 해외 시청자까지 사로잡았다.
소지섭은 이 작품의 흥행 비결을 단순한 ‘재미’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쉽다, 빠르다, 통쾌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다일까 생각해봤죠. 결국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깊이 파고든 게 아닐까.(싶어요)”
그가 꼽은 키워드는 ‘가족’이었다. 전직 비밀요원의 화려한 액션보다,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한 아버지의 마음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아이를 가진 아빠들이 보면서 느끼는 지점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가족과 친구,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가 ‘김부장’에서 주목한 것도 화려한 액션보다 인물의 서사였다. 원작 웹툰은 대본을 받은 뒤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찾아봤고, 민지를 찾는 과정까지 살펴봤다고 했다. “흥행을 예상했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유난히 감이 안 왔어요. 쉽게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운 작품이라고 생각했죠. 시청률 보고 ‘이게 뭐지?’ ‘이게 말이 돼?’ 했으니까요. 지금도 정확하게 뭐 때문에 잘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 자녀가 없는 그에게 고등학생 딸을 둔 아버지 역할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원작에는 없던 ‘딸바보 아빠’의 모습은 감독과 함께 완성한 설정이었다.
그는 “원작 캐릭터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딸을 찾는 과정까지만이라도 아버지의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었다”며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의 김부장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낯설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나이에 대한 부담보다는 ‘내가 이런 역할을 안 해봐서 과연 자연스러울까’ 하는 고민이 컸죠. 그런데 극중 딸이 사춘기 설정이라 아빠와 서먹서먹한 관계에서 시작하잖아요.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그 감정을 만들어갔고, 그래서 나중에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딸 ‘민지’ 역을 맡은 배우 서수민과의 호흡도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민지의 실제 아버지가 제 또래라고 하더라”며 “현장에서도 저를 아빠처럼 대해줘서 오히려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는 ‘냉동창고 액션신’과 딸을 찾은 뒤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는 뭉클한 장면을 꼽았다. “육체적으로는 5부에 나오는 ‘냉동창고 신’이 가장 힘들었다. 추운 한파에 비까지 맞으며 찍어야 했다”고 돌아봤다.
또 “감정적으로는 딸을 찾은 후 함께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장면이 가장 어려웠다. 딸을 다시 찾았지만 또 떠나보내야 할지 모른다는 절박함 속에서 쌓였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고 설명했다.
액션에 대한 애정도 여전했다. “‘광장’ 이후 다시 액션을 하고 싶었는데 ‘김부장’을 만났다”며 “몸이 굳지 않도록 권투와 헬스를 꾸준히 하고 있다. 목표가 분명한 액션, 응징이 있는 액션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한 액션 장면에 대해서는 “앞으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기술이다. 괜찮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김부장’을 완성한 또 하나의 힘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선 평범한 남자들의 연대였다. 최대훈, 윤경호와 만들어낸 유쾌한 호흡은 작품의 또 다른 인기 요인으로 꼽혔다. 소지섭 역시 두 배우와의 시너지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표현하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경호 씨나 대훈 씨가 없었으면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사랑받았을까 싶어요. 세 캐릭터가 겹치는 부분이 하나도 없거든요. 경호 씨는 온몸을 던져서 연기하는 스타일이고, 대훈 씨는 조리 있게 말로 풀어내는 힘이 있어요. 세 사람이 모였을 때 조화가 잘 맞았던 것 같고 저는 오히려 리액션만 해도 자연스럽게 묻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 안에서의 관계가 현장에서도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이 작품은 평범한 가장의 통쾌한 응징극을 내세우면서도, 강도 높은 액션과 잔혹한 묘사로 표현 수위를 둘러싼 논란을 낳기도 했다.
소지섭은 이 질문이 나오자 “심의 기준을 고려하면서 표현 수위를 조절했다”고 말했다. 10부작이라 아쉽다는 반응에 대해서는 “길고 짧은 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어떻게 알차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시청자들의 관심은 벌써 시즌2로 향하고 있다. 드라마가 종영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소지섭이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다.
“큰 줄기를 무엇으로 가져갈지부터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또 딸을 잃어버리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결국 시나리오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않을까요.”
연기대상 욕심도 내려놨다. “진심으로 상 욕심은 없다. 상을 준다면 저보다 ‘김부장’ 팀이 받았으면 좋겠다”며 “같이 고생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인정받는 것이 더 기쁘다”고 웃었다.
30년 가까이 배우 생활을 이어온 그는 “좋은 배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은 되고 싶다”며 “작품 하나하나가 점점 더 소중해진다. 다음에는 액션도 좋지만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다”고 새로운 도전을 예고했다.
‘김부장’은 소지섭에게 경이로운 20% 시청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30년 가까운 연기 내공 속에서도 배우로서 다시 한 번 여유를 찾고, 다음 페이지를 차분히 고민할 수 있게 만들어준 전환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