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이한영’을 연출한 이재진 감독이 척박해진 드라마 현장에 대한 뼈아픈 통찰을 공개했다.
최근 이재진 감독은 서울 마포구 상암 MBC 신사옥에서 취재진을 만나 MBC 금토드라마 ‘판사 이한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14일) 오후 9시 40분 마지막회가 방송되는 ‘판사 이한영’은 거대 로펌의 노예로 살다가 10년 전으로 회귀한 적폐 판사 이한영(지성 분)이 새로운 선택으로 거악을 응징하는 정의 구현 회귀 드라마다.
‘판사 이한영’은 당초 지난해 11월 방영 예정이었으나, 사측이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카지노’를 정규 슬롯에 전격 편성하면서 방송이 연초로 미뤄졌다. 당시 MBC 드라마 PD 53명이 일방적인 편성에 반발하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서명을 내기도 했다.
편성 관련 질문에 이 감독은 “결과적으로 연초 편성이 잘 된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제가 처음 이 작품에 들어갈 때 들었던 이야기는 11월 18일에 첫 방송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에 맞춰서 했는데, 중간에 밀릴 수 있다고 하더라”며 “방송이 미뤄지며 후반 작업 시간이 많아져 만듦새에 신경을 쓴 것은 장점이겠지만, 편집본을 너무 여러 번 보다 보니 스스로 길을 잃기도 했다. 어떤 게 나은지는 현재로선 판단 불가”라고 털어놨다.
다만 “편성 시기도 중요하지만, 결국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면 시청자들은 언제든 본다”며 “나 역시 월급을 받는 직원 입장에서 회사에서 정해주는 방향에 최대한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측의 결정을 존중했다.
이 감독은 글로벌 OTT의 공세 속에서 지상파가 겪는 구조적 위기도 꼬집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예산’이었다.
“제가 입사한 2005년, 처음 조연출을 맡았을 때는 미니시리즈에 들어가는 예산이 회당 3억 8천만원에서 4억 5천만원이었어요. 16부작을 기준으로 6~70억원 선이었죠. 광고가 다 팔리면, 드라마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쉽지 않아요.”
이 감독은 “‘판사 이한영’은 일반적인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이라며 “제가 ‘모텔 캘리포니아’의 공동 연출로 들어갔었는데 그건 멜로물이고 이건 판타지 회귀물인데도 제작비가 회당 1천만원 정도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며 “최근 작품 기준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게 아니다. 그런데도, 과거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드라마로 수익을 낼 수 있던 과거와 달리 ‘이 드라마 반드시 됩니다’라고 윗선을 설득해서 만들어 끌고 갈 수 있는 예산이 아니다. 어떻게 수익이 날지 구조를 다 만들어 놔야 한다. 그래도 몇십억원씩 손해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열심히 해도 적자라고 혼이 난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또 “‘판사 이한영’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덕에) 적자가 크지 않을 것 같지만, 드라마는 대개 하면 적자라고 하더라. 모든 걸 갖춰도 100% 성공하는 드라마는 없다. 어느 정도는 베팅을 해야하는 것인데 그러기엔 현재 미디어 환경이…. 너무 돈이 없다. 수익 구조를 만들려 노력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시청자들의 인식도 꼬집었다. 그는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영화는 돈 주고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드라마는 공짜라고 생각한다”며 “이로 인해 OTT 보급 후 영화가 더욱 빠르게 위기를 겪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드라마 산업 자체가 돈이 많이 든다. K-컬쳐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 보상이 정확하게 돈으로 돌아오지는 않더라. 드라마가 공짜라는 생각은 안 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작품 내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답했다. ‘판사 이한영’ 속 전직 대통령 박광토(손병호 분)을 보면 실제 인물 중 누군가가 떠오른다는 평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제일 경계한 부분이 정치적 해석”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다들 보고 싶은 것들만 보더라고요. 사람들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다 달라요. 댓글을 가끔 보면, 한 명으로 의견이 아주 모이지는 않더라고요. 여러 진영에서 서로 동상이몽을 하는 것 같아서 감사했습니다. 각자 현실 정치에서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 불만을 투영해서 보는 것 같아요. 정치적인 해석은 안 해주면 좋겠습니다.”
이 감독은 또 “명확하게 (특정 인물을) 생각한 사람은 없다. 그저 상식에 맞는 정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속상했던 부분들을 우리 드라마에서 고치려 했던 것뿐이다. 정의롭게 되면 좋겠다는 방향으로 해석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