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대신 기억을 들고 오세요. 마지막으로 들었던 나의 목소리를, 내가 좋아했던 대사를, 오래된 이야기와 가벼운 농담을, 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 안고 오세요.”
연극배우 박정자(83)가 가까운 지인 150여명에게 특별한 초대장을 보냈다. 제목은 ‘부고(訃告): 박정자의 마지막 커튼콜’이었다. 오는 5월 25일 오후 2시, 장소는 강원 강릉시 사천면 신대월리 순포해변이다.
14일 영화계 등에 따르면, ’박정자의 마지막 커튼콜‘이란 제목이 달린 이 부고장은 박정자가 지인들에게 직접 보낸 것이다.
박정자는 “유준상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 속 순포해변을 배경으로 상여를 들고 가는 장면을 넣기로 했다”며 “연극적인 장례 행렬을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면 을 위해 단역들을 동원하기 보단 지인들을 직접 초대한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박정자의 실제 지인인 만큼 그의 가상 장례식이라 할 수 있다. 배우 손숙, 강부자, 송승환, 손진책 연출 등 연극계 동료들과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지영 감독, 소리꾼 장사익 등 평소 친분이 두터운 예술인들이 초대를 받았다.
박정자는 연합뉴스에 “혼자 가기는 쓸쓸했다. 우리가 (이승에) 왔다가 (저승으로) 가는 길인데 축제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축제처럼 준비했다”고 했다.
박정자는 ‘청명과 곡우 사이’에 대해 “감독이 평소 생각하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를 떠올렸다고 한다. 삶과 죽음은 공존하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을 낯설어하지 않게끔, 사는 동안 이런 모습의 장례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며 “‘리허설’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지금도 삶을 정리하고 있는 누군가는 (죽음의) 시간을 맞이할 테니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