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미’가 누구나에게 공평한 외로움을 사랑으로 채울 수 있다는 용기와 위로를 건네며, 지난 6주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23일 방송된 JTBC 금요시리즈 ‘러브미’(연출 조영민, 극본 박은영 박희권) 11-12회에서 서준경(서현진)은 자신이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 앞에서 진실이 언제나 구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주도현(장률)의 침묵과 상처, 다니엘(문우진)의 혼란을 지켜보며 준경이 할 수 있는 건 사과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를 붙잡는 도현으로 인해 다시 용기를 냈기 때문이었다. 15년 전 그랬던 것처럼, 도현이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줄 것이라 착각했던 전여친 임윤주(공성하)는 다니엘을 데리고 독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다니엘이 도현을 다시 ‘아빠’라 부르던 순간은 핏줄을 넘은 이들의 부자 관계가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서진호(유재명)는 또다시 가혹한 운명 앞에 섰다. 진자영(윤세아)이 초로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것. 하지만 다시 시작한 사랑 앞에 무너지지 않았다. 진호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그를 놓아주려 사라진 자영을 기어코 찾아내 붙잡았다. “자영씨 없으면 그 사람 안 될 것 같다”는 김미란(장혜진)의 환영을 만난 자영은 하루 사이 엉망이 된 그를 꼭 안아줬다.
서준서(이시우)는 자신만의 인생 속도로 돌아갔다. 하필이면 지혜온(다현)의 공모전 대상 수상 뒤풀이 자리에 대리운전을 하러 가는 바람에, 모난 자격지심에서 터져나온 날선 말로 그녀를 할퀴기도 했다. 하지만 그제야 눈에 들어온 혜온의 소설책에서 “돈가스에 맥주를 마시며, 딱 이렇게만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진심을 읽었다. 그래서 돈으로 자격을 사는 길을 거부했다. 혜온은 그런 준서의 사과를 받아들이고는, 1호팬에게 1호 친필 싸인을 선사했다.
오랜만에 자영의 생일을 맞아 모두 가족의 집에 모였다. 자영은 케이크 촛불을 불기 전, 담담히 자신의 병을 고백했지만, 누구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박수치고 기념 사진도 남기며 생일을 축하하고, 안아주며 함께 눈물도 흘렸다. ‘서씨네’ 가족 안에서 슬픔과 행복은 그렇게 고요하면서도 요란하게 공존했다. 그리고 오래된 4인 가족 사진 곁엔 또 다른 가족 사진이 하나 둘씩 채워졌다.
시간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흘렀다. 진호는 열심히 치료를 받는 자영의 곁을 묵묵히 지켰고, 혜온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선 준서는 일기예보관에 합격해 내일의 날씨를 전했다. 준경은 도현과 결혼을 준비하며, 입양을 고려중이었다. 그리고 이젠 잠든 도현을 두고 홀로 걷는 밤산책에도 쓸쓸하지 않았다. “행복은 어쩌면 외로움과 닮아있는 거 아닐까”라는 준경의 내레이션처럼,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화양연화의 엔딩을 장식했다.
서현진, 유재명, 이시우를 넘어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러브 미’에는 중심 인물과 주변 인물의 경계가 없이 모든 캐릭터가 극을 풍요롭게 채웠다. 준경, 진호, 준서를 축으로 한 ‘서씨네’ 가족 서사는 아내이자 엄마 김미란(장혜진)이 부재 이후 상실의 슬픔이 인생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각자에게 찾아온 사랑으로 인해 슬퍼야 하는데 설레고, 울어야 하는데 웃음이 삐져나오자, 서로를 비난하는 등 이기적인 가족의 민낯도 드러냈다. 하지만 그 혼돈의 시간을 함께 겪어내며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갔다. 준경과 도현, 진호와 자영, 준서와 혜온의 세대별 러브 스토리가 각기 다른 현실의 고민과 날 것의 감정을 비추며, 다시 사랑하고 또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성장 서사로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들의 지인들은 그 성장사의 주변에 머무는 인물로만 머무르진 않았다. 언제나 준경의 편이었던 든든한 친구들 배수진(이지혜) 전형준(오동민) 부부를 비롯해, 우리네 평범한 소상공인의 얼굴을 담아낸 이모 김미경(박성연) 조석우(정승길) 부부, 준경과 도현의 관계에 균열을 가져온 전여친 윤주와 도현의 아들 다니엘,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생에서 순경이 되는 과정에서 준경과 특별한 우정을 나눈 오원영(강채영), 진호와 준서의 고해를 때로는 묵묵히, 때로는 속 시원한 사이다로 풀어준 신부 창식(이시훈)까지. 누구 하나 소모되지 않았고, 누구 하나의 감정도 가볍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이들과 시청자들 역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다.
섬세하게 현실적인 연출과 서사의 멜로 미학
‘러브 미’가 조용한 인생 드라마로 기억되는 데에는 조영민 감독과 박은영·박희권 작가의 단단한 시너지가 큰 몫을 했다. 조영민 감독은 감정을 설명하거나 밀어붙이기 보다 관계 속에 남겨진 여백과 미묘한 흔들림을 마치 레이어를 만들 듯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섬세한 연출의 장기를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박은영·박희권 작가 역시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감정을 현실적으로 포착하며, 인물의 깊은 내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채워 나갔다. 과장 없이 담아낸 감정의 결은 높은 공감으로 이어졌고, 시청자들의 마음 또한 자연스럽게 풍요로워졌다. 배우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 조영민 감독과 박은영·박희권 작가의 세심한 배려와 존중의 태도는 작품 전반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그렇게 ‘러브 미’는 외로울 때마다 찾아 보고픈 또 한 편의 아름다운 드라마로 완성됐다.
공평한 외로움만큼 사랑으로 채울 수 있다는 용기와 위로
‘서씨네’는 각자의 외로움만 심각했고, 내 인생만 애틋했으며, 죽은 가족의 애도 중에도 각자의 감정이 중요했던, 이렇게 이기적이라 어쩌면 더 평범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엄마이자 아내였던 미란의 부재 이후 서로를 마주하며 비로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외로움은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모두가 나눠 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외로움은 비단 이들 가족뿐 아니라 과거의 상처가 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감정을 잘 아는 자영과 도현에게도 있었다. 철이 든 청춘 혜온 역시 자신의 소설 속에 본인의 외로움을 고백했고, 윤주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기도 했다. 모두 한 번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고, 그 상실은 관계와 감정을 낯설게 만들었다. 박은영-박희권 작가 역시 이처럼 누구에게나 지극히도 평범한 외로움에 대한 고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양도, 색도, 크기도 다른 각자의 외로움의 근원을 따라가 보면 끝내 사랑에 닿아 있었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었고, 연인을 향한 사랑이었으며, 동시에 스스로를 향한 사랑이었다. 그렇게 잔뜩 힘을 주고 살아왔던 이들은 조금씩 그 힘을 내려놓으며 자기 얼굴을 되찾아갔다. ‘사랑해줘(러브 미)’란 말은 이렇게 외로움을 인정하고 마주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상처를 안은 채로도 사랑할 수 있고, 흔들려도 돌아올 수 있다는 안심, 외로움 끝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 등 ‘러브 미’는 슬픔과 아픔의 완벽한 회복이 아니라, 다시 사랑해도 괜찮다는 조용한 허락으로 지금도 어디선가 외로움에 사무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러브 미’는 요세핀 보르네부쉬가 창작한 동명의 스웨덴 오리지널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다.
[양소영 스타투데이 기자]